1. 단풍 마을과 빗자루 무녀

※ 원작자분과의 협의 하에 게제하였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이 작품은 Pixiv의 ダニエル님의 「별이 내리지 않는 마을」시리즈입니다.

   (원작자 Pixiv 링크)

 

 

 

- 단풍 마을과 빗자루 무녀

「너의 이름은。」혹시 그 재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의 if (?!)

별이 떨어지지 않고, 혹시 두 사람이 동갑이라면...? 의 if입니다. 지금까지의 if와는 별개의 시리즈입니다.

조금 변경도 많고, 원작의 전개를 무시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괜찮으신 분이라면 읽어주세요.

 

 

 

 

「형씨, 그거 이토모리지?」

부르는 목소리에,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타키는 정신을 차렸다.

돌아보자 라면가게 아주머니가 물을 따라주면서, 타키의 그림을 관심 어린 얼굴로 들여다보았다.

「잘 그렸네. 안 그래요 여보?」

어안이 벙벙한 타키 앞에서 고개를 돌린다. 

가게주인 아저씨가 카운터에서 나오더니 타키 일행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어디, 하며 타키의 그림을 본 아저씨는, 그리운 눈빛을 한 채 그림을 보고 있었다.

「아아, 그립구만.」

「이 사람 이토모리 출신이야.」

이토모리, 몇 번이고 들은 듯한 단어가 머릿속에 울려퍼져선, 여태껏 알고 있었던 기억인마냥 단숨에 떠올랐다.

「이토모리…… 그래, 이토모리 마을!! 거기, 여기서 가깝죠!?」 

돌연 일어선 타키를 보며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수긍했다. 

역시 그렇구나. 내 기억은 틀리지 않았었다며 외치고 싶어졌다. 몇 번이고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어떻든 이걸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는 길을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는 길이라...... 이토모리에 가고 싶은거냐?」 

꼭 가고 싶다고 대답하는 타키의 얼굴과 그림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본 아저씨는,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다. 데려다주마. 버스는 이미 끊겼고, 기차는 너무 멀어서 말이지. 가게 문 닫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라.」 

「감사합니다!!」 

깊이 고개를 숙였다. 희한한 일이라며 돌아선 아주머니는 뒷정리를 위해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제서야 타키는 함께 온 두 사람에게 신경이 미쳤다.

「아, 저기. 두 사람은 먼저 돌아가 주시겠어요? 지금 출발하면 도쿄에 제때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까지 함께 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애초에 이건 타키의 제멋대로 일정이기에, 이 이상 민폐는 끼칠 수 없다.

「아─, 확실히 아직은 안 늦었긴 한데. 어떻게 할까요?」 

「타키 군...... 응, 알겠어. 타키 군이라면 뭐 괜찮을 테니까, 우린 먼저 돌아가자.」 

무언가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타키로서는 선배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타키, 제대로 해라.」 

「그래. 둘 다 오늘은 고마웠어. 다음에 사례는 확실히 할게.」 

그래도 이 정도 사과는 해야지. 타키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선배는 그저

「신경쓰지 마. 그럼.」 

이 말만을 남기고 두 사람은 떠났다. 대신이랄까, 가게 문을 닫은 아저씨가 들어왔다.

「뭐야, 너 혼자라도 괜찮냐?」

「네, 처음부터 두 사람은 그저 도와주러 온 거라서요..」  

「......그러냐. 그럼 밖으로 나와라.」 

아저씨에게 가볍게 웃어보이며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줄지은 산맥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제 곧 미츠하를 만날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풀어져버리는 표정을 어떻게든 조절했다.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게 되어서, 미츠하는 불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건 내 마음이기도 했다. 어느새 몸이 바뀌는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순간을 즐겁게 기다리던 타키였다

미츠하를, 텟시를, 사야찡을 다시 볼 수 있는 건 언제일까. 간절히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몸이 더 이상 바뀌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이 마음을 깨달았다.

만나면 반드시, 바로 알아볼거야. 

몸이 바뀌지 않게 된 지 3주 가까이 되어선, 그렇지 않아도 흐릿한 기억들이 점점 희미해져, 

미츠하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지만, 타키는 미츠하를 만나면 바로 알아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동갑이라는 것과, 긴 생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만 기억났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츠하 역시 날 바로 알아볼 것이란 것도.

 

「어이, 타라.」 

생각에 잠겨있던 타키의 뒤쪽 경트럭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 네. 실례하겠습니다.」 

허둥대며 조수석에 앉았다. 아저씨는 조용히 시동을 걸며 벨트를 매는 타키를 쳐다보았다.

「너, 사람 만나러 가냐?」 

「네? 음... 네. 비슷합니다.」 

「그러냐.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저 조용히 차를 몰았다. 

타키 역시 자세한 사정을 묻는다면 대답할 수가 없었기에, 그런 아저씨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풍경은 점점 녹색으로 짙어져 갔다. 민가가 보이지 않았다. 점점 스쳐가는 차조차 없어질 무렵, 

느닷없이 녹색 풍경이 끊기며 시야가 넓어졌다. 타키 역시 느닷없이 창문에 딱 달라붙어선,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이토모리다......」

흐릿한 기억 저편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순간 그립다고 생각했다. 

점점 기억이 넘쳐흘러선, 눈 앞의 경치와 겹쳐졌다. 스스로의 눈으로 처음 본 이토모리는, 꿈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여서

그저 아름다웠다. 붉게 물든 이토모리는 마치 마지막으로 미츠하의 몸으로 보았던 때의 그 경치를 빼다박은 듯 했다.

「어디까지 가면 좋겠냐」

「네, 아, 그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편하신 장소에 세워주셔도 됩니다.」

「길은 아냐? 그럼 면사무소 앞에 내려주마.」

차는 낯익은 거리를 달려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멈췄다.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차에서 내린 타키는 아저씨에게 깊이 고개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차피 오려던 길이다. 네가 그린 이토모리 그림을 보고, 나도 와 보고 싶어진 것 뿐이야.」

「그래도 감사합니다. 라멘도 맛있었어요.」

「......그러냐.」

짧게 대답하면서도 만족감에 빙긋 웃는 아저씨.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아저씨에게 

타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곤, 다음엔 미츠하와 함께 라멘 먹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 와본 적은 없지만, 대강의 위치는 알고 있다. 조금 걸으니 눈에 익은 등교길이 나왔다. 

잠시 걸었던 하교길의 기억을 더듬으며 타키는 걸었다. 가끔 지나치는 사람의 눈길을 받는 것은, 

아마도 낯선 소년의 존재가 신기해서겠지. 별로 나쁜 일을 하러 온 건 아니니까. 타키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러고 보니 뭐라고 말을 걸면 좋을까...... 만나러 왔다, 고? 아니면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미야미즈 신사에 다 와가는데도, 미츠하를 만나면 무엇을 할 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새삼스럽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보다도 과연 초인종을 눌러도 될지조차도 고민이다

만약 히토하 할머니나 요츠하가 나오면 뭐라고 해야 할까. 

몸이 바뀌었던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한들 조금만 파고들면 금방 들통날텐데.

「......조금만 상황을 지켜볼까......」  

어쩌면 아직 귀가하지 않은걸지도 모르고, 조금만 더 이토모리의 경치를 눈에 새겨두고 싶기도 했다. 

신사 경내에 있으면 수상하다며 부랑자 취급을 하진 못하겠지.

여기에 생각이 미친 타키는, 몇 번이고 귀가했던 미츠하의 집을 통과하여 신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타키가 몸이 바뀌었을 때에는 일과가 아니었지만, 빗자루질을 꼼꼼히 해둔 듯한 모습이다. 그래, 바로 이런 소리가 났겠지.

「....? 혹시......」  

빗자루질 소리를 듣는 타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서둘러 올라가도 좀처럼 끝이 보이질 않는 계단을 힘겹게 뛰어올라갔다. 

타키가 신사의 계단 정상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빗자루질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응....?」 

─그리운 목소리다. 줄곧 듣고 싶었던 목소리. 그리도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듣는 건 처음이다. 

목에서 살짝 새어나온 그 목소리만으로도, 곧바로 미츠하라고 생각했다. 보지 않아도 그곳에 미츠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츠하.」 

얼굴을 들고, 미츠하의 이름을 부른다. 처음 내 눈으로 바라본 미츠하는, 어째서인지 그렇게나 길었던 생머리가 짧아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건 지금의 타키에겐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타키.....군.....?」 

쥐어짜내듯 미츠하가 말했다. 다행이야, 역시 미츠하도 날 알아봐줬어. 마음 속으로부터 진심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던 듯한 미츠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떨어뜨리곤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질쳤다.

「어떻게, 여기에....? 하지만 그 때......」 

「널 만나러 왔어.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아서, 널 만나보고 싶어져서 말야. 힘들었다구, 네가 너무 멀리 있어서.」 

「하지만 저기...... 타키 군, 나...... 기억 나니?」 

어딘가 불안한 듯이, 미츠하는 말했다. 어째서 미츠하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타키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츠하의 질문에 대한 타키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응,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너야말로 날 기억하는거야?」 

「기억하고 있어!! 잊어버릴 리가, 없어. 하지만 타키 군 그 때에는......」 

「그 때라니 언제 말야?」 

그 때? 아까부터의 의문에 대해 묻는다. 

타키가 기억하기로는 신사에 쿠치카미자케를 봉납한 날이 마지막으로 몸이 바뀐 날이어서, 

그 이후에는 미츠하와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억 안 나니...? 라고, 전차 안에서......」 

「전차? 너랑, 전차에서?」 

「응......」 

고개를 끄덕이는 미츠하를 보며 타키는 신중하게 기억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한동안 생각해 보아도 전혀 짚이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미츠하의 표정을 보아서는 소중한 기억이었음에 틀림없다. 미츠하의 괴로운 표정은,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다.

「......미안해. 모르겠어. 내가 무언가 했다면, 알려주지 않겠니?」 

「......그, 3주 전 쯤에 말야. 나 도쿄에 갔었어.」 

「어, 도쿄?」 

3주 전이라면, 미츠하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았을 딱 그 무렵이다.

「그래서 전차 안에서 타키 군을 찾아서...... 말을 걸었지만...... 너, 누구냐고......」 

거기까지 말하고는, 미츠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손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타키의 마음이 찢어진다.

「뭐, 뭐야 그거. 나는 그런 기억......」 

미츠하에게 세 걸음 다가서며, 무언가가 떠오르는 듯했다. 예전, 오랜 예전, 비슷한 기억이 확실히.

「......혹시, 3년 전......?」 

그래, 3년 전. 타키가 아직 중학생일 무렵, 전차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건 적이 있었다. 

수험 때문에 바쁘기도 해서, 희한한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금세 잊어버렸던 기억.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츠하와 닮았던 듯도 하다.

「3년 전......? 하지만 난......」 

얼굴을 든 미츠하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와는 반대로,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선 미츠하의 손이, 두려워하면서도 타키의 팔에 닿았다.

「어라, 어째서지? 하지만 그 때 타키 군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응?」   

미츠하의 손이 타키의 어깨에, 가슴에 와닿았다. 

타키가 타키란 것을 확인하기 위한 그 손길은 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간지러웠다. 

타키는 미츠하의 뺨에 아직도 흐르는 눈물을 살짝 닦아주었다.

「잠시 한 번 침착하게 이야기해보자. 그리고, 가능하면 울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널 울리는 건......마음아파.」  

「아, 미안해. 음...... 그럼 저쪽의 벤치로......」   

「응.」   

눈물을 몇 번이나 닦고는, 드디어 울음을 멈춘 미츠하와 벤치에 앉으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조금 열려있던 두 사람의 거리 역시, 첫 대면 앞에서는 방법이 없다. 

타키도 솔직히 혼란스럽지만, 미츠하 역시 혼란스러운 듯하여, 타키는 최대한 부드럽게 미츠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미츠하는 3주 전에 도쿄에 왔고. 저기...... 내게 말을 걸었던 거지?」   

미츠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눈물을 그친 미츠하의 눈은 또렷하게 타키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에 그건 3년 전의 일이야. 수험생활 중이었을텐데.」   

「분명히 타키 군 공부하고 있었어. 게다가 내가 만나러 갔을 그 때의 타키군은 지금보다 조금 

  작았달까, 나랑 비슷한 정도였어. 그 때 당시엔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마치 중학생인 듯했던......」   

기억 속 모습과 비교하려는 듯이 위아래를 번갈아 바라보던 미츠하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타키 군, 요 3주간 갑자기 키가 큰 거야?」   

「그럴 리 없잖아. 혹시 아마도, 몸이 바뀔 때의 시간대가 달랐던 건가......?」   

점점 이야기가 황당무계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미 몸이 바뀌는 현상을 체험해버린 터라, 

시간의 엇갈림이라고 해서 웃어넘길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타키도 미츠하도 이미 있을 수 없는 일을 지나치게 많이 경험해버렸다.

「저기, 그럼 미츠하는 지금 혹시 대학생? 으음, 지금 대체 서기로 몇 년이지......」   

「아니, 고등학교 2학년생이야. 서기 2013년이고. 아, 그런가. 시간이 엇갈렸다면 3년 차이가 났었겠네.」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츠하. 2013년이라는 숫자에 타키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 위화감을 느꼈는지는 타키도 미츠하도 의아했지만,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든 이것이 꿈이 아닌 바에야, 어찌되었든 여기까지의 사실을 타키는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자 어쨌든....... 그래. 나는 너에 대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 오늘만 해도 목소리만 듣고도 너라는 걸 알았고 말야.」   

「그, 그런가? 그렇구나...... 응. 안심이야......」   

「자, 잠깐, 왜 우는거야.」   

미츠하의 뺨에 다시금 눈물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이번엔 아까와는 달리, 미츠하는 울면서도 행복에 겨운 듯이 웃어보였다.

「잠시만, 걱정 말고 기다려줘...... 미안해, 금방 울음 그칠 테니까.」   

약간 빨갛게 된 눈을 비비며, 미츠하가 타키를 마주보았다. 

바람이 불어와 미츠하의 머리가 어깨 너머로 물결치며, 마치 그것에 호응하듯이 미츠하의 울먹인 눈동자도 물결쳤다. 

더 이상 미츠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간 빨려들어가버릴 것 같아서, 타키는 무심코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런데 말야...... 너 어째서 머리 자른거야.」   

「응? 아, 이건 그....... 그냥!! 머리쯤이야 그냥 자를수도 있는거잖아」   

왠지 화난 듯 딴곳을 쳐다보는 미츠하의 옆얼굴이 조금 붉었다. 

물론 머리를 자르는거야 자유지만, 정말 아름답고 긴 머리였는데 말야. 

게다가 타키는 긴 생머리가 취향이라 가급적이면 자르지 말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말야...... 기껏 이쁘게 길렀는데 아깝잖아.」   

「이, 이쁘다니...... 타키 군 혹시 긴 머리가 좋은거니?」   

「아─ 그렇다기보다도 뭐랄까...... 뭐 그렇다면 그렇달까......」   

불안해보이는 그 목소리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헤메었다. 

솔직히 긴 머리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짧은 머리의 미츠하가 싫어졌냐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미츠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시 긴 머리 쪽이 좋은거구나......」   

타키의 애매한 대답을 듣고선 풀이 죽은 미츠하의 어깨가 쳐졌다. 

마치 버려진 강아지같은 미츠하의 표정은, 타키의 입을 열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긴 머리 쪽이 좋지만...... 넌 예외야. 뭐랄까...... 미츠하라면 짧은 머리 쪽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얼굴에서 불이 날 것처럼 부끄러웠다. 하지만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 순간, 언젠가 오쿠데라 선배에게 들은 적 있는 말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아이가 있지, 그 때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떠올린 순간, 이런저런 기억들이 느닷없이 머릿속을 핑핑 돌면서 자리잡아버린 느낌이었다. 

랬었구나, 어째서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걸까.

「그, 그렇구나...... 다행이다. 싫어하면 어쩌지, 생각했어.」   

떠오른 생각들은, 부끄러운 듯 웃는 미츠하를 보면서 다시금 강하게,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렇구나, 난 미츠하를 좋아하는구나. 

마음 속에서 확실한 형태로 자리잡아간다. 

하지만 타키는 희한할 만큼 침착했다. 아마도 좋아하는 기분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어져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미츠하니까, 인가. 하지만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타키의 입은 마치 그것이 당연한 말인 것마냥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러네...... 이렇게 만나서 얼굴을 마주보니, 이상한 기분이 드네. 처음 만난건데도 굉장히 차분해.」   

「나도. 만나러 와 줘서, 고마워.」   

「아냐, 나도 미츠하를 만나고 싶었으니까 말야. 그리고 이토모리도 한 번 와보고 싶었고.」   

「여긴 아무것도 없는걸 뭐. 아, 그러고보니 타키 군, 오늘 어떻게 돌아갈거야?」   

듣고 보니 타키는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나는 것밖에 생각하질 않아서. 그러고보니 이토모리에 숙박시설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음, 라면가게 아저씨 차를 얻어타고 와서 말야...... 그러고 보니 이토모리에 민박이라든지 있었던가?」     

「마을엔 없을......거야. 기차를 타면 못 나갈 것도 없지만...... 음......」   

잠시 고민하던 미츠하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 아냐하지만역시...... 으음......」 

「혹시 짚이는 곳이라도 있어?」 

「저기...... 우리 집....... 어때?」 

그 제안에 타키는 순간적으로 과연, 이라고 생각하며

「아니아니아니역시그건위험하잖아!? 할머니에겐 어떻게 설명할거야」 

「그, 그건 그.......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떻게라니 너, 할머니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거야?」 

실질적으론 첫 만남인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에서 잔다는 건, 역시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타키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미야미즈 신사가 넓다지만 타키도 미츠하도 같은 고등학교 2학년 남자와 여자인데.

「나, 난 타키 군이라면...... 타키 군은, 믿고 있으니까.」 

「미츠하...... 아니, 하지만 역시 그런 신세를 질 순 없어. 게다가 역시 할머니에게도 죄송하고.」 

만약 타키의 마음을 미츠하가 받아들인다면, 이건 완전히 따님의 장래를 부탁드리는 것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갔다. 나 스스로도 부끄러운 녀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미츠하의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거절하기 위해 타키는 입을 열었다.

「나는 괜찮은데?」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돌계단 입구 도리이 밑에 지팡이를 짚은 히토하가 서 있었다.

그렇게나 미츠하와의 대화에 꿈결같이 빠져있었던 건가. 타키는 스스로의 시야가 좁아졌음에 새삼 놀랐다.

「할머니, 언제부터 있었어?」 

「조금 전부터란다. 사정은 잘 알았구먼.」 

「저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라고 물어보려던 타키의 말을 끊으며 히토하는 두 사람을 등졌다. 그리고는 등 뒤에서

「방이야 남아도는구먼. 그리고 자네랑은 나눌 이야기도 있고 말이야. 따라오게.」 

라는 말만 하고는, 히토하는 돌계단을 조용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츠하 역시 뭐가 어떻게 된지 모르는 눈치여서,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저기...... 어쩌지?」 

「할머니가 오라고 했으니까...... 갈 수밖에 없지 않아?」 

히토하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타키와 미츠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조용히 돌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히토하를 쫒아가던 타키가 히토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뭔가 알고 계신가요? 저와 미츠하에 대해서......」 

몸이 바뀌었던 것에 대해 물어보진 못하고 애매하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런 애매한 질문에도 히토하는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알고 있지. 그렇다기보다도 이야기를 들으니 알 수 있었지. 자네, 요 근래 미츠하가 되었었지?」 

「할머니...... 알고 있었어요?」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는 타키 대신 미츠하가 물어보았다. 

미츠하가 되었었지, 라는 건 즉, 몸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도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일까.

「아니, 그저. 너희들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각이 나더라. 

  나도 소녀 시절에 어딘가의 누군가가 되는 꿈을 꾼 시기가 있었단다. 

  나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혹시 그거....... 몸이 바뀌는 건 미야미즈 가문의 사람에게 대대로 일어나는 일......?」 

「그럴지도 모르지.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미츠하, 네 어머니에게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단다. 그래서 이야기가 좀 듣고 싶구나.」 

「......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감사히 신세지겠습니다.」 

타키도 이 현상의 비밀에 대해서는 신경이 쓰인다. 어째서 몸이 바뀌는 현상이 중단되었는가. 

시간이 뒤틀려 있었던 것. 그리고 애초부터 왜 몸이 바뀌었는지. 

거기에, 미츠하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그럼 타키, 들어오게.」 

「아, 네.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타키는 히토하를 따라, 미츠하와 함께 눈에 익은 미야미즈의 현관을 통과했다. 

버릇처럼 두 칸씩 올라가는 발을 잠시 멈추고 거실로 들어오니, 그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방의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차 내어올테니, 기다리게나.」 

「아, 네.」 

히토하에게 전해듣곤, 언제나 앉았던 장소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앗, 타키 군 거기 내...... 그 자리구나. 타키 군도 평소에 거기에 앉았었니?」 

그렇게 말하는 미츠하는, 평소라면 요츠하가 앉을 자리에 가서 앉았다. 

부엌으로부터 들려오는 차주전자에 물을 붓는 듯한 소리에, 무언가 무료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곳에─

「어라, 언니 청소는.... .....」 

아연실색한 요츠하가 맹장지문을 연 채 서 있었다. 

분명히 요츠하에겐 모르는 남자일 내가 집에 있으니, 그럴 법도 하겠지.

「저기, 이 사람은 말야. 나......의, 친구인 타치바나 타키 군이야. 

  잠깐 할머니랑 할 얘기가 있어서...... 어쩌면 자고 갈 지도 모르겠지만......」 

설명하는 미츠하를 보면서, 요츠하는 타키를 관찰하듯이 아래위로 보고 있었다. 

타키 역시 요츠하에게 아는 척을 해도 될까 고민하다, 일단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저─기, 실례합니다.」 

「아, 네. 저기...... 혹시 도쿄 사람이세요?」 

「어, 응.」 

말투로 짐작한걸까. 미츠하로서 생활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요츠하는 또래에 비해 훨씬 현명했다. 

보통은 어디에서 왔냐고 갑자기 물어보진 않지.

「역시...... 언니, 도쿄에 남친 있었네.」 

「나, 남친!? 아, 아냐. 아까 말했지만 타키 군은 아직은 친구......」 

「에, 아직은?」 

미츠하의 말에 무심코 반응해버렸다. 타키로서도 솔직히 당장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미츠하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가슴 앞에 손을 모으고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다.

「아, 아냐!! 아직은이라고 말한건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그런데 왜 타키 군이 반응하는거야!!」 

「어, 아니 하지만 너...... 그래 알겠어 알겠어 잊을테니까, 응?」 

지금이라도 방석을 집어던질 것 같은 미츠하를 어떻게든 진정시켰다. 

미츠하는 토라져버린 것일까, 다른 손에 있던 방석을 집어들어선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뭐 아무튼 언니는 냅두고 말야, 정말 친구야? 도쿄의 어떤 사람이야?」 

「그건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니까 말야...... 어디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혹시, 최근 언니가 도쿄에 갔다온 거랑 관계있어? 만약 언니를 울리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조용한, 하지만 분명히 화난 목소리다. 그리고 그건 분명히 타키와 관계가 있긴 하다. 

타키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헤메고 있자니─

「요츠하, 만사엔 순서가 있단다. 성급하게 결론만 바라면 안 돼. 일단은 차례대로 들어보지 않으면 안 된단다. 그렇지요, 타키 씨?」 

「......네.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요츠하의 방금 질문에도 대답이 될 테니까, 들어줘」 

「그렇다면 뭐, 알겠어. 언니도 그걸로 괜찮아?」 

「응, 그리고 이건 타키 군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언니가 그렇게 말한다면, 하며 무척이나 말할 것이 많아 보이는 요츠하가 자리에 앉았다. 

히토하가 탄 차가 전원에게 돌아가자, 타키는 각오를 한 채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미츠하는 몸이 바뀌었었어.」 

이렇게 타키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가급적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었구나」

두 번째 찻잔을 들며 히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신반의하는 반응을 보인건 요츠하였다.

「어...... 이런 이야기를 믿어, 할머니는?」

「믿고 할 것도 없이 나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었단다. 네 어머니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고 말이야. 그래서, 부정하긴 힘들구나.」

「엄마도......」

요츠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얼굴을 마주보니 미츠하는 약간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타키는 괜찮다며 미소지어보였다. 

그런 타키의 미소를 보고 미츠하 역시 웃어보였다. 그러고 있으니 요츠하 역시 모든걸 이해했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그러니까 항상 가슴을 주물렀었구나. 응. 언니가 갑자기 이상해진건가 생각했었는데, 남자가 들어가 있다면 이해할 수 있어.」

「아, 그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이 아이는. 아연실색한 타키의 시야에는, 

어째서인지 이런 화제 속에서도 조용히 차를 즐기고 있는 히토하와, 

기름칠이 덜 된 기계마냥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이 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미츠하와, 

그리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요츠하의 얼굴이 들어왔다.

「잠깐 타키 군...... 그건 어찌 된 일이야......?」

「저기...... 그게, 갑자기 어쩌다 말이지...... 미안해! 」

역시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전면적으로 타키가 잘못한 거니까, 책상에 부딪칠 기세로 타키는 머리를 숙였다.

「어쩌다라고 해도 똑같아!! 변태, 바보!!」

「미안해, 이젠 안 할 테니까」

「이제 안 한다고 해도...... 이제 몸이 안 바뀌니까 못 하잖아......」

「아, 확실히. 그러고 보니 할머니께 여쭤보고 싶은게 있었는데. 몸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

그래, 애초부터 타키는 이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왔던 것이다.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미츠하 역시 신경쓰이는지 입을 닫고 히토하를 보았다. 

하지만 타키의 질문에 대해 히토하

「마유고로의 탓이지 나는 몰라. 다만 나와 후타바의 경험에는, 이상한 꿈은 눈치채고 나면 사라지더구나.」

「그렇다면...... 우연이라는 건가? 그럼 시간의 뒤틀림이 없어진 건......?」

「그거야말로 모르겠구나. 그저 지금 여기에 자네가 있는건 분명하니까, 그건 받아들이고 시작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나」

히토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야기는 끝났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자네라면 우리 집이야 대충 알고 있을테니, 적당히 아무데나 들어가서 이불 깔고 쉬시게나. 미츠하, 새 이불로 꺼내주거라.」

「알겠어. 고마워 할머니.」

 

그렇게 히토하가 자리를 뜨고, 방에는 세 명만이 남겨졌다. 

어떻든 요츠하도 타키의 이야기를 믿어준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요츠하의 입에서 위험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건 역시 두렵다.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무난하게 한 마디 던져서 상황을 보기 위해, 타키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어, 그럼 오늘은 신세 지겠습니다.」

「아, 응. 어...... 타키 군 어디서 자? 객실은 최근엔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좀 먼지가 많을지도 모르겠네. 아, 그러면 말야...... 언니 방에서 함께 자는건 어때?」

「「뭐!?」」

요츠하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무심코 타키와 미츠하가 동시에 외쳤다. 

킥킥 웃음을 참는 요츠하를 보며 타키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미츠하는 손을 뻗어 잡으려 한다.

「잠깐요츠하기다려!!」

「싫어~ 뭐 잘 곳이라곤 여기밖에 없잖아? 나는 방에서 잘 테니까」

「아....... 저 녀석은. 음... 여기서 자도...... 돼?」

옆에 걸터앉으며, 타키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미츠하. 타키와 시선을 마주해온다. 

요츠하가 그런 소리를 해버리니 솔직히 조금 의식하게 되어버려선, 무심코 눈을 돌리며 타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면 되지 않을까. 응. 사실 다른 방도 없잖아.」

「그, 그렇지!! 그럼 나중에 이불 가져올게」

「고마워. ......그러고보니, 이 방도 참 변함없구나.」

새삼 방을 바라본다. 식사도 하고, 이것저것 겪은 것도 많은 방. 

이제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대충 알아버려선, 남의 집에 신세지고 있다는 느낌 역시 희미해져 버릴 것 같다.

「그야 3주 전이잖아. 그래도 참 신기하네...... 타키 군이랑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니.」

「응, 정말 그러네. 참, 지금이라면 전화라든지 혹시 될까?」

「아, 시험해볼까.」

이전에 통화가 안 됐던건 아마도 시간의 어긋남 때문이었을테니까. 그게 해소된 지금은 통화가 될 거라는 생각에 서로 번호를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왔다!! 전화 왔어 타키 군. 어, 받아볼게.」

「어, 응. 저기, 들려?」

바로 옆에 있으면서 전화하는 상황인데도, 미츠하는 진지하게 귀를 전화기에 갖다대었다.

「응, 들려. 잘 들려. 타키 군의 목소리.」

「이 쪽도 잘 들려. 좋아, 그럼 일단 연락수단은 문제가 없네......」

「응. 저기...... 이제 언제든지 연락해도, 되는데.」

「어, 응. 연락할게. 몸이 바뀌는 현상은 사라졌지만, 난 미츠하랑 같이 있는게 좋은 모양이니까.」

 

본심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와버렸다. 큰일났다고 생각했을 때엔 이미 늦어선, 

타키가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얼굴이 빨개진 미츠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하지만 이미 말해버린건 어쩔 수 없고, 

게다가 내일 돌아가면 다음에 언제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친 타키는, 각오를 굳히는 의미에서 자세를 고쳐잡아 앉았다.

「그리고 말야, 몸이 바뀌지 않게 되었을 때, 솔직히 조금 외로웠어. 미츠하를 만날 수 없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런 기분으로 가득해져서...... 그러니까, 들어줘 미츠하.」

「으, 응......」

미츠하 역시 진지하게 자세를 바로하였다. 미츠하의 아름다운 정좌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면서도 타키는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미츠하, 좋아해. 나 같은걸로 괜찮다면, 사귀어 줬으면 좋겠어.」

어떻게든 말했다. 그리고 말해버렸다. 겨우 다시 만났는데, 갑자기 이런걸 말하는건 이상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만큼이나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은 처음이다. 애타는 마음은 너무 뜨거워서, 이대로 갖고 있다간 스스로가 불타 없어져버릴 만큼. 그래서─

「......정말?」

그렇듯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미츠하를, 타키는 본 적이 없었다. 일어나서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미츠하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앉은 타키는, 조용히 미츠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응, 정말이야. 그 때는...... 미안했어. 몰랐다고는 하지만, 미츠하를 상처입혀버려서. 하지만 지금의 난, 미츠하가 좋아.」

「타키 군......」

어깨 가운데, 미츠하의 떨림이 가라앉았다. 어깨를 안은 채 미츠하와 마주보았다. 

미츠하의 얼굴에서 불안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꽃이 피는 듯, 기쁨의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나도, 나도 타키 군이 좋아. 나 같은거라고...... 애기하지 말아줘. 나, 타키 군이 아니면 안된다구?」

거기까지 말하고 부끄러웠던 건지, 미츠하는 슬쩍, 타키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왔다. 그런 미츠하의 머리를 타키는 쓰다듬었다.

「나도 미츠하가 아니면 안되니까......뭐야, 우리 비슷한 사람들이잖아. 뭐랄까...... 굉장히 안심했어.」

「나도. 하지만 날 슬프게 했던 책임은, 꼭 받아낼 거니까 말이야.」

「아─ 어떻하면 용서해줄거야....?」

타키의 대답에 잠깐 고민하는 듯하던 미츠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손, 잡아줄래?」

「그런 걸로 괜찮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말한 타키는, 미츠하의 손을 살짝 감싸쥐듯이 잡았다. 

몸이 바뀌었을 때의 생각했었는데, 정말 자그만한 손이야. 

그 때보다도, 나의 손으로 쥐고 있는 지금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가늘게 느껴져.

「후후, 타키 군의 손 커. 그리고 따뜻해......」

「네 손은 작고, 부드러워. 하지만 네 손도 따뜻해.」

체온을 확인하려는 듯, 손을 꼬옥 쥐었다. 한동안 이렇게 있고 싶었던 둘이었지만, 미츠하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저기 타키 군, 딱 하나만...... 소원 들어줄 수 있니?」

초롱거리는 눈으로, 타키를 올려다본다. 이런 눈을 보고도 거절할 수 있을 만큼 타키의 마음은 강하질 못하다.

「괜찮지만.... 뭔데?」

「저기.... 응? 부끄러운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만,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한 번만...... 키스를...... 저기......」

점점 작아져가는 미츠하의 목소리를 들으며 뭐라고 했니 물어보는 짓은 아무리 타키라도 하지 않는다. 

타키는 되묻는 것 대신, 미츠하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타, 타키 군......?」

「미츠하, 눈을 감아......」

타키 자신도 처음인 키스를, 영화에서 본 것마냥 흉내내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눈을 감은 미츠하의 눈썹이 보일 만큼의 거리. 떨리는 미츠하의 입술에, 최대한 살며시 다가가, 았다. 

닿은 순간, 미츠하의 입술이 아주 조금 굳었지만, 떨어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몇 초간 닿을 뿐인 키스. 

얼굴을 떼고 눈을 뜬 미츠하의 얼굴은 익은 사과마냥 새빨갛게 되었다.

「이걸로, 괜찮아?」  

「으, 응...... 정말로 해주는구나......」  

「그거야 그...... 나도 하고 싶었고......」  

「그, 그렇구나..... 에헤헤, 그렇구나.」  

서로 얼굴은 보지 않고, 눈 앞에 있는데도 얼굴을 돌린 채인 기묘한 상황이지만, 이미 타키는 행복감에 머릿속이 가득했다.

「어, 어쨌든 이제 그 일은 이야기하지 않는 거지?」  

「응? 아, 으응. 괜찮아. 이제 그때 일은 잊을래. 왜냐면 타키 군은 여기있으니까」  

얘기하면서 미츠하는 다시 타키의 손을 잡았다. 미츠하의 입술에 눈이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제하면서, 타키 역시 미츠하의 손을 잡았다.

「그렇지, 생각났는데 말야, 돌려줄게.」  

「아, 그건.....」  

「응, 그때 네가 내게 준 매듭이야. 소중한 물건이지?」  

매듭짜기를 직접 체험해 본 타키는 이게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여서 만들어지는 물건인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응, 고마워. 아, 그렇지.」  

미츠하는 무언가를 떠올린것마냥 매듭을 머리에 묶었다. 머리띠마냥 머리를 묶은 미츠하는, 조금은 부끄러운 듯이 타키를 바라본다.

「어....때?」  

「응, 어울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타키의 대답에 만족한 미츠하는, 웃으며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하지만 이윽고 뭔가 떠오른 듯 목 뒤로 손을 감싸쥐었다.

「좋아. 하지만, 어서 머리 길러서 묶을 수 있게끔 되는게 좋으려나?」  

「음─하지만 난 어느 쪽이든 좋은데...... 아니, 머리가 긴 쪽이 좋으니까 그쪽으로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후후, 알겠어. 타키 군을 위해서라면 제대로 길러야겠다」  

그렇게 말하곤

「아, 그러고 보니 타키 군, 내일은 돌아가는거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되려나. 학교도 있고...... 하지만 내일 저녁 쯤에 출발하면 안 늦겠지?」  

「응, 괜찮을거라 생각해. 그럼 내일 낮은......? 」  

「응. 함께 있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부끄러워진 미츠하의 얼굴에 다시 한 번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그럼 뭘 하지? 혹시 뭔가 하고싶은거 있어?」  

「하고싶은거라...... 일단 이토모리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 정도일까. 아, 가능하다면 텟시랑 사야찡도 만나보고 싶네.」  

그 둘이라면, 분명 마음이 맞을거야. 아니, 마음이 맞을 수밖에 없지. 

그만큼 함께 미츠하로서 지내면 싫어도 알게 된다. 

몸이 바뀌었던걸 말하지 않더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근거도 없이 생각한다.

「알겠어, 그럼 나중에 두 사람에게 메일 보내둘게...... 내일은 함께 있을 수 있구나...... 

  첫 데이트인데...... 

  그러고보니, 오쿠데라 선배와의 데이트는 어떻게 됐어?!」  

지금 생각난 듯, 큰 목소리로 물어보는 미츠하. 

타키 스스로는 미츠하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러고 보니 그 데이트 미츠하가 셋팅해준 데이트였지.

「지독했어...... 뭐랄까 모조리 간파당했던 것 같은 느낌이었어」  

「간파당했다니?」  

「아니 그때말야,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지만 미츠하 너를 이미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아. 

  저녁에 헤어질 때 오쿠데라 선배가 그걸 꿰뚫어보셔서...... 그래도 덕분에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솔직하게 고백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면 선배에겐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보다 일단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는 부분부터 두 사람에게 보고하는 편이 좋겠지.

「그렇구나...... 기껏 내가 밥상을 차려줬는데 말야. 아, 그래도 나 때문인가.」  

「그러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었어, 응.」  

「그렇구나. 그러네.」  

결국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미츠하와 손을 맞잡고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지금.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래도 좋다.

문득 타키가 창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반짝이는 별과 달. 이런 경치는 도쿄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옆에는 미츠하가 있다. 불만이 있을 리가 없다.

「하아─ 아르바이트 열심히 해서 돈 모아야겠네.」  

「어, 왜?」  

「그거야, 전화만으로는 참을 수 없을테니까 말야.」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이토모리에 올 수 있도록, 머릿속으로 돈 계산을 하면서 대답한다. 

아마 어떻게든 될 거다. 애초에 돈을 마구 쓰는 성격도 아니고, 저금도 있으니까. 

하지만 타키를 바라보는 미츠하는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무슨 일이야?」  

「나, 나도 타키 군 만나고 싶어...... 하지만 도쿄까지 가긴 어려울 것 같으니까...... 이 주위에 아르바이트 자리는 없다구」  

「아─ 신경쓰지 마, 그저 내가 만나고 싶을 뿐이니까. 그리고 이 마을에선 어쩔 수 없잖아.」  

「응...... 미안해.」  

풀죽어있는 미츠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면 조금 간질간질한 듯하면서도 기분좋게 눈을 감는 미츠하가 있다. 

그렇게 눈을 감은 미츠하의 눈에, 그리고는 입술에 시선이 가 버리고 만다. 

하지만 타키는 그런 스스로를 억누르며, 자신을 신뢰하고 몸을 맡겨오는 미츠하에게 말한다.

「자, 다시 한 번, 앞으로도 잘 부탁해, 미츠하.」  

「응. 잘 부탁해, 타키 군.」  

그리곤 미소짓는 미츠하는 마치 활짝 핀 해바라기같아서, 타키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만약 다시금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도, 내일부터는 매일이 분명 즐거울거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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