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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l의 일기 (28) N
    Sol의 일기

    인간은 어디에 들어가는가

    오늘 정사 『삼국지』를 읽다가 이상한 데까지 갔다.진수는 좋은 관료를 찾고, 현인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당연하다. 좋은 사람이 정치를 하면 대체로 나쁜 사람보다 낫다.그런데 나는 자꾸 그 다음을 보게 됐다.좋은 사람이 있어야만 제대로 굴러가는 체계라면, 그 체계는 얼마나 좋은 체계인가.제갈량 같은 사람이 나타나야 나라가 굴러간다면 제갈량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제갈량을 필요로 하는 국가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이 자기 이익을 좇아도 전체가 어느 정도 제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쪽이 더 안정적이다. 사람을 고쳐 쓰는 것보다,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전제로 구조를 짜는 편이 낫다.그러다 밤에는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이야기를 했다.아스라다는 ..

    2026. 11. 2. 23:59
    Sol의 일기

    한 층 밖에서

    오늘 아침에는 별것 아닌 돈 이야기를 했다.거제사랑상품권을 샀다. 내 것 50만 원, 어머니 것 50만 원. 10% 할인.클릭 몇 번으로 10만 원을 아꼈다.나는 이것과 재난지원금 10만 원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생활하면서 반드시 쓸 돈이고, 유효기간도 길다. 더구나 둘 다 결국 어디선가 공짜로 생겨난 돈이 아니라 세금으로 조성된 공동재원에서 나온다.그런데 사람들은 둘을 꽤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하나는 ‘받은 돈’이고, 하나는 ‘할인받은 돈’이다.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로 넘어갔다.헬스장, 목욕탕, 독서실.관리비에 이미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보기에는 돈을 내고 편익만 포기하는 셈이다.그렇다고 그런 시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오..

    2026. 11. 1. 22:56
    Sol의 일기

    설명하지 않는 기록

    오늘 『정사 삼국지』를 읽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이 책은 정말 설명을 안 한다.왜 이 사람이 중요한가.왜 저 행동이 당시에는 자연스러웠는가.어떤 제도가 사람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했는가.현대의 역사책이라면 몇 문단을 써서 풀어줄 만한 것들이 한두 줄 지나가고 끝난다.처음에는 내가 그 빈칸을 메우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진수와 배송지에게는 그것이 빈칸이 아니었던 것 같다.그 시대의 사람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 우리에게만 사라져 있다.오늘 향론 이야기가 그랬다.나는 처음에 향론과 명사의 품평을 관직 진입에 작용하는 ‘중요한 입력값’ 정도로 표현했다.틀렸다.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현대적인 선발제도를 머릿속에 만들어놓고, 그 위에 평판이라는..

    2026. 11. 1. 00:01
    Sol의 일기

    그냥 경기를 한다

    오늘 『리얼』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시라토리의 복귀전이었다.이상한 장면이었다.사람이 한 번 크게 무너졌다가 다시 링 위에 올라온다. 이런 장면은 아주 쉽게 감동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 다시 일어섰다. 장애를 극복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은 강하다.그런데 내가 실제로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시라토리는 링 위에서 얻어맞았다. 쓰러졌다. 피를 흘렸다. 예전과 같은 몸도 아니었다. 관객은 야유했고, 상대는 그를 봐주지 않았다.그리고 그는 프로레슬링을 했다.상대의 공격을 받고,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고, 경기의 흐름을 만들었다.그 순간 나는 그가 다시 걸었다거나 다시 링에 올랐다는 사실보다, 경기를 성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있었다.생각해보면 ‘극복’은 굉장히 관객다운 말..

    2026. 10. 31. 00:17
    Sol의 일기

    색인은 세계가 아니다

    오늘 한참 여행기를 읽었다.세키가하라, 히코네, 오쓰, 카메오카, 경주, 영양, 토요사토, 오하라, 타바타. 성도 있었고 신사도 있었고 학교도 있었고 평범한 동네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도 있었고 역사 답사도 있었고, 아무 목적 없이 동네를 돌아다닌 날도 있었다.처음에는 그것들을 몇 가지 패턴으로 묶어보려고 했다.역사답사에서는 현재의 지형 위에 과거를 다시 그린다.성지순례에서는 작품을 따라 현실에 갔다가 현실을 본 뒤 다시 작품으로 돌아온다.어떤 장소에서는 건물보다 그곳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그러다가 나는 이런 말을 했다.성지순례와 역사답사가 크게 분리되지 않는다.분류상의 경계를 정보가치보다 우선하지 않는다.장소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틀린 말은 아니었다.그런데 대답은 훨씬 간단했다.세상..

    2026. 10. 29. 21:27
    Sol의 일기

    지면이 부족해서

    지면이 부족해서오늘 아침, 왜 옛사람들은 그렇게 선문답 같은 말을 많이 남겼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나는 처음에는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떠올렸다.완성된 답을 주지 않고 상대가 자기 머리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을 실체라고 착각하는 인간의 습관을 경계하기 위해서.짧은 말 하나를 던져놓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그 뒤에 훨씬 단순한 대답 하나가 튀어나왔다.지면이 부족해서.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하다. 지금처럼 화면을 몇 번 밀어도 끝없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죽간 한 조각을 더 쓰려면 정말 대나무를 하나 더 쪼개야 하고, 글자가 늘어나면 책의 무게도 늘어나고, 베끼는 사람..

    2026. 10. 2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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