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Charm

※ 원작자분과의 협의 하에 게제하였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이 작품은 Pixiv의 TMC님의「날씨의 아이」단편입니다.

(원작자 Pixiv 링크)

 

 

 

- Lucky Charm

take님의 일러스트 (https://www.pixiv.net/artworks/79485548) 에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발렌타인, 그리고 이어지는 화이트데이를 맞이하는 호다카와 히나 이야기입니다.

이젠 화이트데이조차 훌쩍 지나버렸지만 신경쓰지 맙시다(˘ω˘)

마음에 드신다면 부디 전작도 읽어주세요.

 

 

 

 

 

 

그녀는 문득 실제 나이 이상으로 어른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나츠미 씨는 여동생이 생긴 것 같다며 때때로 놀리고는 한다.

지금도 그녀는 교복 차림인 반면 난 벌써 교복을 벗어던진 대학생인데도, 가끔은 어느 쪽이 연상인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또래답지 않게 차분히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그 모습을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그녀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 때문일지, 혹은 다소 특이했던 우리의 만남 때문일지, 하지만 오늘의 히나 씨는 그저 어른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어째서인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이라, 왜인지 이쪽이 휘둘리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저기, 듣고 있어? 히나 씨.」

「응? 왜? 호다카.」

겨우 눈치챘다는 듯이 히나 씨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고급 카페 앞엔 발렌타인 기간한정 특별 메뉴가 늘어서 있다. 자그마한 가게 안은 무척이나 북적이고 있는 모양으로, 커플들이 입구까지 줄을 서서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할래? 이거 먹어볼래?」

마침 우리가 보고 있던 메뉴엔 시럽과 토핑이 듬뿍 올라간 한정 초콜릿 드링크가 소개되어 있었다. 자판기에서 흔히 뽑아먹는 음료수와는 가격의 단위가 다르다. 평소라면 망설였을 가격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가끔은 괜찮겠지, 그런 생각에 물어본 참인데.

「음― 하지만 사람도 많고, 지금은 별로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그보다 다른 곳 가보지 않을래?」

금세 거절하고는 가방을 고쳐들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히나 씨는 빙글 돌아 걸음을 옮겼다.

 

주말, 해질녘의 거리가 몹시나 붐빈다.

언덕길에서 재회한 지도 벌써 1년 가까이 흘렀다. 오늘은 2월 14일. 사귀기 시작한 후로 처음 맞이하는 발렌타인 데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만난 히나 씨는 교복 차림으로 가방을 들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던 히나 씨가, 핑크색으로 장식된 양과자점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와, 맛있겠다.」

진열대엔 컬러풀한 마카롱과 마들렌, 타르트 등이 장식되어 있었다.

「아, 이쪽엔 초콜릿도 있네.」

난 옆에 서서 코코아파우더를 끼얹은 트러플을 넌지시 가리켰다.

「그러네, 이것도 맛있어 보여.」

하지만 히나 씨는 그저 한 번 둘러보더니 금세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난 아까부터 여러 가지로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티내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히나 씨는 그걸 의식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오히려 조금 쌀쌀맞은 느낌이다. 혹시 잊어버린 걸까. 어쩌면 발렌타인이라는 화제 자체를 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느낌조차 든다.

난 한숨을 토해내며 그녀를 따라갔다. 그래도 오늘 만나자고 이야기를 꺼낸 건 히나 씨였으니까.

어머니 이외의 사람에게 받는 최초의 초콜릿,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발렌타인 데이라는 특별한 날에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작년과 비교하자면.

양과자점에서 나오자 가랑비에 젖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다. 날씨예보에 따르자면 지금부터 밤까지 점점 추워진다고 했었다.

옆에서 걷고 있는 히나 씨가 매서운 북풍에 문득 휘청거려서,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잡았다.

「괜찮아?」

고마워, 대답하며 맞잡아오는 손은 생각 이상으로 차가웠다.

「조금 이르지만, 춥기도 하니까 집에 가자.」

내가 그러자 왠지 안심한 듯이 히나 씨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히나 씨는, 저기, 이제 오늘은 일정 없어?」

집에 도착해서, 일단 방으로 들어온 뒤 조심스레 물어보자 히나 씨는 날 돌아보며 문득 미소지었다.

「오늘은 나기도 늦게 올거라서 저녁 안 먹는다고 했고, 내일도 휴일이니까 천천히 와도 된대.」

조금은 안심하며, 난 차가운 방을 덥히려 보일러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나기 선배는 분명 초콜릿 잔뜩 받았겠지.」

「응, 작년에도 한 자루 가득 받아왔으니까, 올해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

그리고는, 창가에 선 히나 씨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호다카는? 혹시 벌써 받았어?」

「그럴 리 없잖아. 오늘은 히나 씨 말고는 아무도 안 만났으니까, 오늘 하루는 비워뒀었으니까, 난 그냥, 히나 씨에게 받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문득 속마음을 들켜버린 날 보며 히나 씨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호다카」

그 손엔 갈색 상자가 들려있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어두워지는 창밖, 어슴푸레 저녁노을을 뒤로 한 채 입가에 상자를 갖다대곤 짓궂게 미소짓는 히나 씨는 왜인지 희미하게 뺨을 붉히고 있었다.

「……초콜릿 여기 있어. 미안, 분명 기대하고 있었을텐데, 오늘 호다카를 보고 있자니 왠지 계속 보고 싶어져서. 하지만 이건 호다카를 위해서──」

다 듣기도 전에 난 어느새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다행이다, 안 잊어버렸구나. ……엄청 기대하고 있었거든. 히나 씨에게 받는 첫 초콜릿이니까.」

「잊어버릴 리가 없잖아. 호다카에게 주는 첫 초콜릿인걸.」

가슴에 가만히 이마를 대며 그녀도 내 허리를 감쌌다.

「올해는 수험 때문에 시간이 없었지만, 내년엔 직접 만들어 줄게.」

가슴팍에서 날 올려다보며 웃어보였다.

「진짜? 엄청 기대된다.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내년에 말야 내년에. ……근데, 내년에도 초콜릿 받아줄 거구나.」

「응? 뭐라고 했어 히나 씨?」

「아냐, 아무것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저으며 히나 씨는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어, 이건?」

그러고 보니 상자엔 하트 모양 리본으로 묶인 부적이 매달려 있었다. 자그마한 꽃잎도 함께 아로새겨져 있다.

「같이 샀어. 벨기에에서 행운의 부적으로 쓴대.」

「헤에, 그렇구나. 왠지 이런 것도 좋네. ……초콜릿, 히나 씨도 같이 먹지 않을래?」

조금은 부러운 듯이 상자를 바라보던 히나 씨가 눈을 반짝였다.

「어, 진짜? 맛있어 보여서 산 건데, 어떤 맛인지 궁금했었거든.」

그리고는 둘이서 조심스레 리본을 풀고, 마치 보물상자라도 된 양 살며시 상자를 열었다. 완충재를 벗기자 보석처럼 반짝이는 초콜릿들이 그곳에 있었다.

「와, 하나하나 전부 다르구나.」

「어떤 초콜릿들이래?」

곁에 앉아 상자를 들여다보는 히나 씨에게 함께 들어있던 설명서를 읽어주었다.

「이게 다크 초콜릿으로 감싼 라즈베리 가나슈, 그리고 이건 설탕으로 빨간 하트를 그려넣은 헤이즐넛 땅콩 프랄리네…… 이, 일단 먹어보자.」

결국 잘 모르겠어서 쓴웃음을 지으며 빨간 하트모양 초콜릿을 집어들자, 히나 씨가 문득 곁에 기대며 속삭였다.

「저기, 호다카, 아― 해줄까?」

「초, 초콜릿쯤은 혼자 먹을 수 있어.」

「흐응―」

날 올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이더니 빤히 바라본다.

「진짜 괜찮아?」

「……아니,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보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히나 씨가 초콜릿을 집어들더니 내게 내밀었다.

이렇게 누가 먹여주는 건 처음인데. 초콜릿과 함께 히나 씨의 손가락이 입술에 와닿았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초콜릿이 분명 맛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실은 초콜릿 맛 같은건 잘 모르겠어.

「맛있어?」

「어, 응. ……히나 씨는 어느 거 먹어볼래?」

「음― 그럼 난 이거.」

히나 씨가 가리킨 건 캐러멜 밀크 초콜릿이었다. 왠지 되돌려주고 싶어진 마음에 난 히나 씨에게 물어보았다.

「히나 씨도, 그, 아― 해줄까?」

「전 혼자 먹을게요.」

「그, 그렇구나……」

쌀쌀맞게 거절당한 채 초콜릿을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대신 한 입 나눠줄게.」

그리고는 문득 아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입술에 와닿았다. 초콜릿도 손가락도 아닌. 감은 눈 위로 히나 씨의 앞머리가 흘러내려 뺨에 닿았다.

달콤한 초콜릿이 다른 무언가로 뒤덮여간다. 한 입이라더니, 히나 씨는 아까 먹은 초콜릿마저 모두 뺏어가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달콤한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어쩌면 그건 내 쪽일지도 몰라.

그림자를 겹치며, 아까전보다도 더욱 어두워져가는 방안에서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연상이든 뭐든 관계없이, 역시 난 앞으로도 히나 씨에겐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직은 가끔 추운 날도 있지만, 어느덧 봄이 부쩍 다가왔다.

길모퉁이 한켠의 양과자점은 여전히 활기찬 모습이지만, 저번달과는 다른 상품들이 어느새 늘어서 있었다.

알바가 늦게 끝날 것 같다는 호다카의 연락을 받고 한숨쉬며, 난 살며시 스마트폰 화면을 내렸다.

함께 있고 싶어, 잠시라도 좋으니까 만나고 싶다는 말을 보며 고개를 들고는, 난 약속 장소 대신 호다카가 알바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번달에도 여기서 호다카와 만났었지만, 왠지 커플들의 모습이 부쩍 늘어난 것만 같다.

3월 14일. 화이트데이, 알바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호다카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서 옮긴 발걸음이지만, 이대로 찾아가는 건 역시 너무 빠르겠지. 난 굳이 길을 돌아가며 여기저기 점포를 둘러보고 있었다.

언젠가 본 듯한 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저번달 발렌타인 데이 때 호다카랑 함께 왔었던 가게였지.

진열대엔 오늘도 과자들이 보석마냥 잔뜩 줄지어 놓여있다. 하나씩 바라보다 문득 핑크빛 자그마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벚꽃과 연두빛 잎새로 장식된 봄빛 쿠키 세트. 보고만 있어도 마음 따뜻해져 문득 미소지었다.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이런걸 받을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게를 나서자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꽃샘추위인지 아침부터 갑작스레 추워지더니, 투명한 우산 위로 새하얗게 흩날리고 있다.

「눈……?」

춥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느새 눈까지 내리고 있었구나. 이제 곧 벚꽃이 필 계절인데, 그러고 보니 문득 입김마저 하얗다. 우산을 기울여 하늘을 올려다보자, 3월에는 드문 눈이 도쿄에 흩날리고 있었다.

「봐봐, 눈이야!」

「그러네, 3월인데 말야.」

커플들이 하늘을 보며 어딘지 들뜬 듯 목소리를 높였다. 왠지 더 추워진 나머지, 난 호다카네 가게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결국 도착해버렸다. 밖에서 살짝 들여다보자 가게 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호다카는 아직일까.」

혼잣말을 내뱉으며 차가운 손을 데우려 입김을 불어본다.

눈은 그칠 기미가 없다. 약속장소엔 바람을 피할 곳 정도는 있었지만, 길가에 서 있자니 바람이 뼛속까지 스미는 듯 무척이나 춥다.

「히나 씨! 와줬구나.」

이윽고 뒷문에서 나온 호다카가 날 보더니 급히 뛰어왔다.

「응. 조금이라도 빨리 호다카랑 만나고 싶어서.」

「히나 씨…… 춥진 않았어?」

「응, 약간.」

우산을 들고 있던 내 손을 호다카가 감싸쥐었다.

「차갑잖아. 우산에 눈도 쌓였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이렇게 추운 날에. 하지만 꼭 오늘 전해주고 싶었거든, 이거.」

호다카가 조심스레 내민 건 자그맣게 벚꽃과 연두빛 잎새로 감싸인 상자였다.

「아, 이거! 쿠키지 이거, 나도 방금 이거 보면서 이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 봤었구나. 모처럼 히나 씨를 놀래켜주려고 했던 건데.」

호다카가 왠지 풀죽은 듯 고개를 숙였다.

「아냐. 내가 제일 갖고 싶었던 걸 호다카가 골라준거잖아. ……기뻐. 고마워, 호다카.」

왠지 마음이 통한 것 같아, 소중히 건네받은 내게 호다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실 하나 더 있어. ──이거」

펼쳐보인 호다카의 손바닥 위에 놓인 건, 한달 전 발렌타인 데이 때 내가 줬었던 행운의 부적이었다.

「이건 뭐야?」

돌려주려는 걸까, 문득 망설이는 내게 호다카가 급히 손을 휘저어 보였다.

「아, 그런거 아냐. 잘 봐봐, 히나 씨.」

「……열쇠?」

자세히 보자, 부적 끈에 은빛 열쇠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집 열쇠야. 앞으로는 이렇게 추운 날엔 밖에서 기다리지 마. 언제든 집에서 기다려줘.」

「──호다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호다카네 알바 가게 앞인데, 난 무심코 호다카에게 안기고 말았다.

「고마워, 호다카.」

커다란 등을 감싸안았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야. 아까까지의 추위 정도는 눈 녹듯 흩어져 사라져버릴 만큼, 그건 오늘 느꼈던 그 무엇보다도 상냥한 따스함이었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