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팬픽/너의 이름은. / / 2023. 3. 18. 14:09

생일 축하합니다

 

 

- 생일 축하합니다

2023년 7월의 어느 날. 여름 한가운데의 도쿄의 더위는 아지랑이마냥 피어오르고 도시는 녹아내리고 있다.

여전히 혼잡한 거리의 모습 역시 어딘가 지쳐보인다. 의욕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파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우와. 이게 뭐야?」

「오는 길에 어쩌다가.」

실은 인형가게에서 한참 고르다가 사온거지만, 일단 그렇다고 해 둔다.

「내가 고슴도치 좋아하는건 어떻게 알았어?」

그야 방에 이렇게 고슴도치가 많은데 모를 수가 있을까.

「헤헤, 고마워. 소중히 여길게.」

별 것 아닌 열쇠고리지만 그걸 소중히 손에 쥐는 미츠하. 이윽고 집 열쇠에 열쇠고리를 끼운다.

「그렇게 들고 다니면 거추장스럽지 않으려나...」

「아냐아냐. 이게 좋아. 이러면 항상 들고다닐 수 있으니까.」

6월의 어느 날 이후 우리는 집을 옮겼다. 한달 새에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고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여긴 우리의 새 보금자리니까. 

도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니 다행히 나름대로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월세도 반반이니 부담이 덜하다.

「그래서 저녁 먼저 먹을래? 아님 샤워 먼저?」

「음... 어떻게 할까...」

그러면서 미츠하를 껴안는다. 사랑스러워서 어쩔 수가 없다.

「차암, 또 이런다. 배고파지면 요리하기 힘들단 말야.」

「하하, 미안해. 밥은 내가 할 테니까.」

「정말? 오늘 내 차례였던 것 같은데... 흐음, 그럼 용서해줄게.」

실은 요리재료도 사 왔다. 오늘은 일식 도전이다.

「헤에... 일식이야? 타키가 일식 만드는건 처음 보는데.」

「미츠하가 하는걸 많이 봤으니까, 좀 따라해 볼까 싶어서.」

「나도 이탈리안 음식 만들어보고 싶은데! 왜 안 가르쳐주는거야?」

「너도 나한테 가르쳐준건 아니잖아...」

말하면서 대파를 썰고 다시마 국물을 우려낸다. 일단은 된장국이겠지.

제철은 아니지만 자반고등어를 굽고, 적당히 이것저것 반찬을 꺼낸다.

가끔은 이런 소박한 저녁도 괜찮겠지. 오히려 아담하니 마음이 안정된다.

「잘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된장국에 입을 대더니 놀라워하는 미츠하.

「와, 잘 만들었다. 나보다 나은거 아냐? 이러면 내 장점이...」

「하하, 그럴 리 없잖아. 그냥 따라해본거야. 미츠하처럼 마음이 담겨있는 음식은 아니니까.」

「뭐야. 마음을 담아서 만들지 않은거야? 실망이네.」

「아니, 그...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좋을 대화를 하며 저녁을 먹는다. 두 사람 다 미소지은 채로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나 흘러간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안 할게. 미안해.」

「부... 부끄럽게 와 이라노.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제. 됐다 마.」

텟시네와 오쿠데라 선배네와의 트리플 데이트. 이런 용어를 쓰긴 하던가. 아무튼 여섯이 모였다.

덧붙여 타카기는―

『됐어, 커플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다음에 밥이나 사라고.』

라며, 오지 않았다. 뭐, 녀석도 좋은 놈이니, 언젠가는 누군가 그 진가를 알아주겠지.

「그래도 역시 너흰 같이 있는게 보기좋아. 정말 잘 어울리는 한쌍이란 말이지.」

「서, 선배... 저흰 잘 어울리지 않는 건가요?」

째릿. 츠카사를 노려보는 오쿠데라 선배. 점점 잡혀 사는구만... 눈에 선하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던거야? 저번에 만났을때 미츠하, 굉장히 힘들어 보였는데.」

걱정하는 듯한 사야카. 그러고 보니 6월의 그날 이후, 친구들과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미츠하와, 서로에게 마음을 쏟느라 바빠서, 마치 세상에 우리 둘 뿐인 듯한 느낌으로 한 달을 보냈었다.

「그, 그게... 별 일 아니었어. 응.」

「그래...?」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는 미츠하. 나 역시 그 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뭐, 이젠 괜찮으니까.

「타키를 자꾸만 잊어버려서 힘들었어. 어째서 아직도 이러는건가 하는 자책감에...

  타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같은건 타키랑은 안 어울리는구나... 싶어서.」

울려고 하는 미츠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이젠 괜찮잖아.

「하, 하지만 이젠 괜찮아. 응. 잊어버리면 다시 떠올리면 되니까. 헤헤.」

「그랬구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야카.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어보이는 듯도 하다.

「난 뭔가 말다툼이라도 했었나 싶었어. 그게 너네, 정말 좋아보였단 말야. 천생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 속 커플처럼 잘 어울렸는데.」

「그... 그래?」

부끄러워하는 미츠하. 울다가 웃다니 이건 너무하네. 귀엽잖아.

그때 문득, 새삼 깨닫는 바가 있다.

「뭐... 미츠하가 잘 기억나지 않아도, 미츠하는 분명히 날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말이지. 나도 미츠하를 기다리고 있고.」

「으엑...... 바보 커플에서 닭살 커플로 진화한건가.」

진심으로 소름끼치는 듯 어깨를 감싸쥐는 오쿠데라 선배.

「하하... 그래 맞다. 여태 그것도 몰랐냐. 미츠하는 널 항상 기다려왔다고. 10년이나 말야.」

그렇다. 나도 그랬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딘지도 몰라도, 쭈욱 기다려왔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타키......」

눈물을 글썽이던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미츠하. 이거... 위험한데. 슬슬 자리를 떠야겠다.

「그럼 아쉽지만, 우린 먼저 가볼게. 시간이 없어서 말야.」

「아직 9시밖에 안 됐잖아. 망할 커플 같으니.」

「이렇게 빨리 가서 뭐할려고 그래~?」

「그, 그런거 아냐 사야찡. 헤헤... 다음에 또 연락할게.」

미츠하도 같은 마음인 듯 따라 일어선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가게를 나선다.

전철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우리의 집까진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여정이지만,

전철에 서서 시달리는 것조차도 미츠하와 함께 하면 즐거운 시간이 된다.

「오늘은 집에 가서 뭐할까?」

「헤헤... 타키 내일 휴일이지?」

「응... 일단은 일요일이니까. 미츠하도 그래?」

「응...」

「......」

두 사람은 말없이 미소지으며 창밖에 흘러가는 도쿄의 야경을 바라본다.

 

「또 출장이야?」

「응... 그렇게 됐어.」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게 되었다. 이탈리아로 해외출장. 피렌체나 베네치아 등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더구나 6월에 회사에서 꽤나 불안한 모습을 보여버린 터라, 거절하기에도 난처한 상황에 처해버렸다.

실은 여비도 충분히 지급되고, 견식도 넓힐 기회라 거절할 이유가 없는 건이긴 하지만...

「미츠하 생일 전까진 꼭 돌아올테니까. 기다려줄래?」

「어, 내 생일 기억하고 있었구나. 헤헤...」

기뻐하는게 그 대목이구나. 기억하는게 당연하잖아.

「응. 난 괜찮아. 다녀오세요 여보.」

「응. 미안해. 대신 이번 주말엔 미츠하와 꼭 붙어 있을테니까.」

「칫, 항상 하던거잖아. 흠...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그러네... 여름이니까. 홋카이도도 괜찮으려나.」

「아와지시마는 어때?」

「그것도 괜찮으려나. 하지만 수선화는 봄에 피니까 지금은 좀 시기가 안 좋을지도 모르겠네.」

「괜찮아. 내년 봄에 또 가면 되니까.」

「그럴까. 일단 렌트부터 해야겠네.」

두 번이나 이사하는 바람에 여유자금이 없어져서 아직도 차를 못 샀다.

정말 바보 커플이다. 내년엔 꼭 차를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미츠하를 태우고 이곳저곳 데려다줘야지.

 

「정~말 이뻤어. 꽤 멀었지만, 다녀온 보람이 있네.」

「응. 즐거웠다니 다행이다.」

미츠하는 사진을 보며 웃고 있다. 아카시해협대교에서 지나가던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은 두 사람의 사진.

미츠하의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나는 바람 때문에 살짝 찡그리고 말았다. 우스꽝스러운 사진이다.

하지만 미츠하는 마냥 좋은 모양이다.

「이제 내일... 출발이지?」

「응. 아침 일찍 출국해야 해. 생일 전까진 꼭 돌아올게.」

「응. 기다릴게. 난 걱정말고 몸 건강히 다녀와.」

빌린 자동차에 조금 흘러간 노래가 스며든다. 유즈의 여름색이다. 우리의 하루도 여름색으로 저물어간다.

 

 

이탈리아의 여름도 슬슬 절정이다. 도쿄와는 다른 건조한 더위에 목이 탄다.

「......」

대성당도 직접 견식했고, 이런저런 미팅도 모두 처리했다. 이정도면 성공적인 출장이다.

숙소에서 홀로 지내는 밤은 꽤 쓸쓸했지만, 그녀의 사진을 보며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다.

얼른 끝내고 도쿄로, 그녀에게 돌아가야지.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나중에 휴대폰 열어서 보면 기억나겠지. 나도 정말 바보구만.」

씁쓸하게 웃는다. 뭐 이름같은건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내가 그녀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럴거라 마음으로부터 확신한다.

 

슬슬 귀국일이 다가와서, 선물가게를 찾아본다.

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반드시 선물을 사서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커다란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음. 저거면 좋아할 것 같은데. 아마도. 확실하다.

「저기, 받는 분 이름을 쓰지 않으셨는데요.」 

아차. 이름이 뭐였더라? ......

뭐 그게 그리 중요한가. 적당히 써둔다.

「EMS로 보내주세요.」

배송료가 꽤나 비싸지지만, 왠지 빨리 보내야 할 것 같다.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었겠지. 멍청하게 또 까먹었지만 말이다.

 

 

8월의 어느 날 도쿄. 왠지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하루 병가를 낸 미츠하가 집에서 쉬고 있다.

햇살 너머에 빨래를 팡팡 펴서 널고 있다. 이러고 있자니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된 기분이다.

「역시 평일 낮에 이러고 있으니까 좀 이상하네...」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그때, 왠지 세제 냄새가 역했던건지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화장실로 달려간다. 아무래도 병원을 가보는게 좋을 것 같긴 한데......

 

「4주 되셨네요. 아이는 잘 크고 있습니다. 몸조리 잘 하시구요.」

「네.」

왠지 몸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랬었구나. 

......그런데 누구 아이더라.

「그야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인게 당연하잖아. 나도 정말 바보구나.」

희미하게 미소짓는 미츠하. 그러면서도 휴대폰을 열어본다.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잔뜩이다. 왠지 노래도 듣고 싶은걸.

유즈의 여름색을 들으면서 아와지시마에 다녀온 그 날을 떠올린다.

「언제 돌아온다고 했더라......? 으음...... 뭐, 꼭 돌아올테니까.」

 

 

슬슬 여름이 끝나간다. 여름의 별밤은 아름답다. 뭐 그렇다고 해도 도쿄지만.

퇴근하고 홀로 저녁을 먹고는, 잠깐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이 너무나 답답했었다. 누군지 모를 사람을 기다리는 그 막연함.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린다는 것을. 그러니까 괜찮아.

그때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계십니까?」

「아, 네.」

무슨 일일까. 나가서 받아본다.

「여기요.」

커다란 택배상자를 내려놓고 돌아간다. 미츠하는 그걸 조심스레 든다.

「우왓, 가볍잖아.」

크기에 비해 너무 가벼워서 놀란다. 이윽고 그걸 들곤 현관으로 들어온다.

「누가 보낸거지...? 이런거 주문한 적 없는데......」

택배상자의 전면을 살펴본다. 보낸 사람은...... 타키다.

그리고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그대, 라니. 바보, 또 이름 까먹었구나.」

미소지으며 택배상자를 연다. 사람 크기만한 큼지막한 고슴도치 인형이다.

「우와아......」

눈을 반짝이며 몇 번이고 바라보는 미츠하. 이윽고 껴안는다.

「너무 좋아...... 생일 선물이구나 이거. 타키가 보내준거네.」

고슴도치 인형을 안고 방 안을 천진난만하게 굴러다니는 미츠하. 

「......헤헤. 하지만 역시 타키가 더 좋은데. 타키 대신이란 거야?」

듣는 사람도 없지만 인형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미츠하.

「타키가 올 때까지 잘 부탁해?」

고슴도치를 머리를 맞대며, 살짝 눈물을 글썽이는 미츠하. 하지만 전혀 불안해보이지 않는다. 인형 역시 왠지 웃는 얼굴이다.

 

 

「후우......」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 이런 돈아까운 짓을 하다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반드시 오늘 내로 도착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결국 자정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주머니의 열쇠를 꺼내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우리의 집은 여전한 모습이다.

「......음, 자고 있네.」

■■■가 고슴도치 인형을 껴안은 채 바닥에서 자고 있다. 택배상자는 뜯어진 상태 그대로다.

「이게 뭐야, 그렇게 좋았던거냐. 불도 안 끄고.」

쓴웃음지으며 택배상자를 살짝 치워두고 옷을 갈아입은 뒤 불을 끈다.

아무래도 바닥에서 자면 감기 걸리겠지. 이녀석 잠버릇도 안 좋으니까.

미츠■를 안아들고 침대로 향한다.

「......응?」

미츠하의 얼굴이, 낯선 남자에게 안겨있는 부끄러움에 잠시 당혹해하더니 이윽고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빨개진다.

「헤헤...... 늦었잖아. 생일날까진 온다고 해놓구선.」

「미안해. 하하...... 비행기가 연착되어버려서 말야.」

「아냐, 괜찮아. 아...... 너무 좋다.」

미츠하가 안긴 자세 그대로 목을 감싸안아온다.

나는 잠시 그대로 미츠하를 든 채 바라본다. 새삼 사랑스럽다. 익숙한 듯 처음보는 얼굴이다.

「우린 정말 행운이야.」

「응?」

「이렇게 오랜만에 볼 때마다, 타키를 처음 만난 그날같은걸. 또다시 반하게 되어버리는걸.」

「하하...... 부끄러운데. 다시 봐도 반해주는거야?」

「응.」

고개를 끄덕이는 미츠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거구나. 웃음이 떠오른다.

만날 때마다 다시 반한다니. 무슨 바보같은 소리인가. 뭐 난 바보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그대라니 그게 뭐야. 택배기사 아저씨가 분명히 비웃었을거야.」

「미안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더라고...... 하하.」

「바보.」

미츠하가 안겨들며 운다. 하지만 그 눈물은 따스하다.

「기다렸어...... 와 줘서 고마워.」

「응.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지금 왔어.」

「어디 아픈 곳은 없지? 잘 다녀온거야?」

「덕분에 잘 다녀왔어. 휴가도 받았고...... 또 어딘가 놀러가자. 앞으로 3일 간은 날 가져도 좋아.」

「3일뿐이야? 3일 뒤면 못 가지는거야?」

입을 삐죽거리며 미츠하가 볼을 부풀린다.

「아냐아냐. 쭉 가져도 돼.」

「헤헤. 음~ 어디로 가면 좋을까.」

그러면서 품에 얼굴을 묻는 미츠하.

「타키 냄새, 너무 좋아.」

「아직 샤워도 안 했는데......」

「그래도 좋아.」

「바보구나, 우리.」

자정을 넘긴 시각에, 두 사람은 거실에서 하염없이 안겨있었다.

조금씩 움직이는 시곗바늘과, 바닥에 누운 채 미소짓는 고슴도치 인형만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쿄의 늦여름이 그렇게 흘러간다.

 

 

 

 

「신랑신부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사랑하며 아껴줄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어느 가을날, 테시가와라와 사야카의 결혼식. 결국 예식장에서 결혼하게 되었다.

이럴려면 결혼박람회는 왜 그렇게 많이 갔던걸까. 녀석들도 참... 쓴웃음짓게 된다.

하지만 뭐,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야카도 놀라볼 만큼 아름답다.

행복을 거머쥔 듯 하염없이 기뻐보인다. 왠지 딴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울리지 않는 턱시도를 입은 테시가와라는 수염까지 밀고 나니 더더욱 어색해보인다.

그런 그가 맹세를 입에 올리니, 왠지 더더욱 진심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쁘다, 사야찡.」

「그러네. 텟시도 멋있게 차려입었네.」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바라본다. 가족사진과 친구사진을 찍고 나면 조촐한 연회도 있을 예정이다.

 

「너네 아직 결혼 안했냐?」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아니, 난 당연히 결혼한 줄 알고...... 우린 뭐 방금 했지만.」

하하,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고보니 그러네.

「결혼식 할거면 당연히 청첩장을 보내줬을거잖아. 뭐 하지만, 우린 이미 사실상 결혼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말야.」

잘도 이런 뻔뻔한 말도 입에 올리게 됐구나. 스스로에게 감탄한다. 하지만 옆을 바라보니―

「사실상은 또 뭐야~ 나도 결혼하고 싶어! 혹시 날 사랑하지 않는거야?」

우왓. 뺨을 잔뜩 부풀린 미츠하가 머리를 들이받고 있다.

「어이. 너 또 미츠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우왓. 농담같지 않은데.

「하하, 아냐 아냐. 그냥 왠지, 결혼식은 10월 4일에 할까 싶어서 말야.」

「아, 다음달이구나. 짜식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지...... 우리도 부를거지? 꼭 갈테니까 말야.」

「그래. 우리 걱정은 말고 신혼을 마음껏 즐기라구.」

「그래, 와줘서 고맙다.」

사야카는 새삼 부끄러워진건지 얼굴을 숙이고 있다. 테시가와라는 턱시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손놀림으로 찻잔을 들고 있다.

「그럼 우린 가볼게. 다음엔 우리 결혼식에서 보자.」

「그래 기대하마. 다음에 보자.」

미츠하와 손을 맞잡고 예식장에서 빠져나간다.

 

「흥.」

「미, 미안해. 아직 화난거야?」

「몰라~」

얼굴을 돌린 채 걷고 있는 미츠하. 하지만 손은 맞잡은 채다. 이것 참......

「미안해. 결혼식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야. 용서해줘.」

「헤헤...... 아냐. 하지만 역시 좀 신경쓰이네.」

「응? 날짜가 좀 안좋은가?」

「아니 그런건 아닌데...... 웨딩드레스가 잘 안 어울리진 않을까 싶어서.」

아이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귀국한 그 날 들었다. 뛸듯이 기뻤다. 한편으론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나와 미츠하의 분신이 태어난다니. 갑자기 세상의 색채마저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다.

「그렇겠네...... 날짜를 좀 앞당기는게 좋으려나?」

「아냐. 아마 괜찮을거야. 3개월이면 그렇게 티도 안 날테고......」

어느덧 화가 풀린듯한 미츠하.

「그런데 말야, 왜 10월 4일이야? 혜성이 떨어진 날이란 건 기억하고 있지만......」

「뭐...... 그것도 있지만, 언젠가 들었던 노래가 기억이 나서 말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츠하. 나는 말을 이어나간다.

「아직 미츠하와 재회하기 전에, 카페에서 들었던 노래가 있었거든. 제목이 10월 4일이었어.

  그땐 정말 가슴이 답답했거든.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어딘지도 모르겠고......

  줄곧 그런 답답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어. 그러다 미츠하를 만난거야.」

「헤에...... 타키도 그랬구나.」

「응. 그래서 그 마음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싶달까.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 날짜를 잡은거야. 역시 좀 시기가 늦으려나......」

「아냐 아냐. 헤헤...... 좋은 날인 것 같아.」

맞잡은 손을 꼬옥 쥐어오는 미츠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미츠하가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안 귀국날, 곧바로 차를 구매했다.

미츠하는 말렸지만, 어차피 늦든 빠르든 사야 할 차니까. 좀 더 미츠하를 편하게 해주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의 아이가 생기면 데려가주고 싶은 곳도 많고.

「그러고보니 이 아이, 4월에 태어나겠네.」

「아마 그쯤이려나.」

「응. 우리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4월에 태어나는거야. 우리 4월에 재회했잖아. 똑같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름은 뭘로 해야 좋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향한다. 정면에 다가오는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러선, 가슴 속 일말의 불안감마저 지워주는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에 달달한 팬케이크라도 사줘야겠다. 분명 미츠하는 기뻐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언제나처럼 미츠하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타키였다.

 

 

 

 

- 핫산 후기 (170130)

별마을 팬픽 핫산을 하다보니 나도 하나 써보고 싶어진 게 결정적인 계기겠지만,

평소 듣던 노래가 다르게 들리면서 쓰게 된 게 아무래도 이유인 것 같다.

읽어준 갤럼은 눈치챘겠지만 중간중간 노래가 들어가있어. 그리고 스토리와 가사의 연관성에 좀 신경을 써뒀고.

어설프게 신감독 흉내를 좀 내봤다. 사실 그럴려고 쓴 글이기도 하고. 혹시 읽게 되면, 노래도 한번 들어봐줬으면 해.

 

꽤나 간결체로 쓰게 됐는데, 원래 내가 만연체를 잘 못쓰기도 하고 너무 장황하게 쓰면 신파극이 될 것 같아서 자제했어.

대신 노래를 들으면 어느정도 와닿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다. 너무 노래에 맡겨버리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설정변경은 거의 없어. 다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생각한 바로는,

영화 엔딩에서 재회하고 나서 모든게 잘 풀릴 리는 없다고 생각했어. 다시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는거고,

사실 비현실적인 요소를 빼더라도 첫 연애가 잘 풀리는건 아무래도 좀 힘들지. 내 경험에도 그렇고.

그래서 한번 써 본 글인데, 역시 생각처럼 잘 뽑히진 않네.

두 사람의 '기억을 잊는 것' 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가는, 그런 내용이야.

 

재밌게 봐줬다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이제 본분으로 돌아갈까 싶다.

생각해둔 번외편이 있긴 한데, 일단은 하던 핫산부터 마무리해야겠지. 

쓰다보니 소설도 아무나 쓰는게 아닌 것 같더라. 아무튼 읽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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