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팬픽/너의 이름은. / / 2023. 3. 18. 14:12

나를 사랑했던 사람아

 

 

 

 

교토의 하늘이 시린 듯 푸르다.

「......잘 지냈나?」

무뚝뚝한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흘러도 이대로일 것 같다.

하지만 어떻든, 살아가야 한다.

「......」

 

 

2023년 12월의 어느 날.

어느덧 결혼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타키, 오는 길에 딸기 좀 사다줘~」

「알겠어. 다녀올게.」

미츠하는 휴직신청을 내고 집에서 쉬고 있다.

이제 슬슬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해서, 아무래도 한동안은 일을 쉬어야 할 듯하다.

그렇다고 집에서 가만 있는건 역시 좀 심심하니까―

「헤헤. 오늘도 힘내볼까.」

적당히 빨래와 청소를 한 뒤, 매듭끈을 만들기 시작한다. 도쿄의 12월은 춥지만 두 사람의 방은 따뜻하다. 

한가로운 오전에 차 한잔과 함께 매듭끈을 만들고 있자니,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된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뿌듯해진다.

아니, 아내인 건 사실이지만.

「오랜만에 만드려니 역시 잘 안되네......」

휴직계를 낼 즈음 할머니께 제안을 받았었다.

「난 요즘 눈도 침침해서 좀 힘들구나. 미츠하 네가 매듭끈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

「괜찮긴 한데...... 이거 문화재청 일인거죠?」

「그렇단다. 이토모리는 없어졌지만, 전통만은 사라져서는 안되지.」

이토모리에 혜성이 떨어진 지도 어언 10년. 이토모리의 존재는 물리적으로는 완전히 소멸하였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아있고, 아직도 이토모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힘겹게나마 이토모리의 문화를 보존해줄 사람을 찾았었고,

많은 사람들의 추천으로 히토하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여태껏 힘써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 축사 같은건 다 까먹었는데.」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단다. 어차피 토시키도 있지 않느냐.」

「참, 아버지도 계셨었지. 응, 힘내볼게요.」

그런 이유로, 여유시간마다 두 사람의 신혼집에서 매듭끈을 만들고 있는 미츠하였다.

정부지원금도 받을 수 있기에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그보다는 이 그리운 감각이 좋다.

언젠가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매듭끈을 만들고 있으면 실과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통하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타키와 연결되는 것 같다. 그 감각이 너무나도 좋은 미츠하였다.

「헤헤...... 타키 군 오늘은 빨리 돌아와주려나.」

어차피 퇴근시간은 정해져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게 되어버리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녀왔어. 딸기 여기있어.」

「어서와~」

꽤나 이른 시각. 6시도 안 되었는데 타키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

연말연시이니만큼 회식자리가 있었을게 분명한데, 뿌리치고 온 모양이다.

「회사일은 괜찮았어?」

「하하...... 사실 미팅이 있었는데 말야.」

「괜찮은거야?」

「결혼한 지 2달 된 아내가 있다고 하니 다들 이해해주는 눈치였어.」

이해라기보단 질시하며 쫒아내는 분위기였지만, 아무튼 좋은게 좋은 것이다.

「헤헤...... 그렇구나. 나 딸기 먹고싶어.」

「응? 여기.」

「아니 그거 말고.」

「응?」

잠시 어리둥절하며 미츠하를 바라보는 타키. 하지만 곧 의도를 깨달은 듯이―

「어쩔 수 없네 미츠하도. 자, 아―」

「아― 

  헤헤, 달콤해.」

이런 사람이 곧 애엄마가 된다니, 이것 참.

「아, 그러고보니 이번 주말엔 슬슬 아버님이라도 찾아뵙는건 어때? 너 교토에 갈 일도 있잖아.」

「응, 매듭끈도 갖다줘야 하니까. 그럼 겸사겸사 가보자.」

「겨울의 교토도 꽤 이쁘니까 말야. 부부여행 삼아 괜찮겠네.」

「타키 군도 차암―」

아직도 부부란 말이 어색한건지 얼굴을 붉히는 미츠하. 두 사람의 행복한 겨울밤이 흘러간다.

 

 

「자네들이 왠일인가?」

「이제 한 해도 다 저물어가고, 미츠하가 교토에 볼 일도 있어 겸사겸사 찾아뵈었습니다.」

「뭐 그건 고맙네만...... 자네를 만날 때마다 왠지 멱살이 잡힐 것 같아서 말이지.」

「아 그게...... 하하...... 그 때는 죄송했습니다.」

「아닐세. 아무튼 용건이 뭔가?」

결혼 전보다 더 엄격해진 듯한 토시키. 미간의 주름은 10년 전보다 확연히 굵어져있다.

「그냥 찾아뵌거에요. 안되나요?」

「뭐...... 그런건 아니다만. 아무튼 차나 들지.」

세 사람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 차를 마신다.

토시키는, 혜성이 떨어진 그 날로부터 잠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었다.

재해를 예언했다는 둥, 선견지명으로 대참사를 막았다는 둥, 온갖 소문이 돌았다.

토시키로서도 본격적으로 정치가가 되기 위한 다시없을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기회를 스스로 거부했다.

애시당초 주민을 대피시킬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그 계기를 만들어준게 미츠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도, 미츠하로부터 후타바의 모습을 겹쳐보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왠지 지금까지처럼 살기가 힘들어졌었다.

「......」

이런 모습을 봐버리면 더더욱 그렇다. 두 사람이 결혼한 뒤 한층 심해졌다.

미츠하에게서 계속 후타바가 겹쳐보인다. 그리고 그의 남편에게선, 지난날의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금슬좋은 모습과, 한시라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은듯한 저 분위기가 너무나도 닮았다.

「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감상에 젖어 너무 표정이 심각해졌던 모양이다. 이제 딸에게 걱정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아무것도 아니다. 잠깐 생각할게 있어서 말이다.」

「요즘도 강의 때문에 바쁘신가보군요.」

「뭐, 그렇지.」

이 세상에 후타바가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에게만 보이는 환상으로서가 아닌,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모습으로서.

그를 위해선 미야미즈 신사의 복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바로 토시키 자신이었다.

애초에 민속학자였고 미야미즈 신사에서 실무도 몇 년간 봐왔으니, 그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히토하도 있지만, 히토하 역시 궁사(宮司)로서의 일에 대해선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학문으로서 체계를 갖추어야만, 오랜 세월 미야미즈 신사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몸은 건강한가?」

「네. 걱정마세요. 타키 군이 매일 맛있는거 사다주는걸요.」

「하하...... 뭐, 잘 보살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네가 못미더운건 아니네만......」

잠시 고개를 들더니 더욱 엄격해진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는 토시키.

「......뭐, 아무것도 아닐세. 난 가볼 곳이 있어서. 찾아와줘서 고맙다.」

이대로 있으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뜨는 토시키.

「응, 다음에 봐요, 아버지.」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버지, 얼마 전에 다녀가셨나봐.」

「그런가보네. 화환도 마련되어있고......」

교토의 한 공동묘지. 타키와 미츠하는 성묘를 하고 있다.

이토모리가 완전히 박살나버렸기 때문에, 후타바의 묘 또한 이장해서 교토로 모셨다.

미야미즈 신사의 체계 자체가 교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솔직히 왜 굳이 교토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때문에 교토에 살게 된 토시키가 자주 공동묘지에 들르는 듯하다.

「다음에 또 올게요, 어머니.」

묘비를 한번 쓰다듬고는 자리를 뜨는 두 사람. 12월의 새파란 하늘도 왠지 웃어주는 듯하다.

 

 

 

두 사람이 교토를 찾아간 그날 오전.

「......잘 지냈나?」

한 달만에 성묘를 온 토시키. 화환을 들고 있다.

묘비를 청소하고, 화환을 내려놓고는 잠시 그대로 응시한다.

「너는 그 모습 그대로구나. 난 이제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

후타바의 환영이라도 보는 듯이 중얼거리는 토시키가 회한에 젖는다.

「그래도...... 축사도 이제 복원했고, 지난달엔 세미나도 열었어. 미츠하가 매듭끈도 만들어주고 있고.

  적어도...... 미야미즈 신사가 잊혀지는 일은 없을거야. 이젠 강의만 하면 되겠지......」

근황을 보고하는 토시키. 사실 달리 할 말도 없다. 할 말이 없다기보다 말이 잘 나오질 않는다.

시퍼런 12월, 교토의 겨울하늘이 야속하다. 별일없는 듯 구름 한 점 없다.

주위의 참배객들 역시 의례적으로 무덤을 찾곤 화환을 두고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하지만 올 때마다 어쩔 도리가 없어진다.

「그래도...... 열심히 해온 것 같다. 사람들이 널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둘이서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쓴웃음짓는 토시키.

적어도 미츠하와 요츠하가 있으니까, 내가 죽더라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가끔 생각한다.

죽으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가끔 한다.

하지만 두 딸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가급적 내 손으로 하고 싶다.

왠지 후타바도 그걸 바랄 것 같다.

「나는 잘 살고 있다. 걱정말고 기다려줘, 후타바.」

아아, 하지만 한 번만 더 만나고 싶다......

식자로서 당연히 알고 있다. 무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든 망자가 그걸 들을 수 있을 리는 없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지도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바라게 된다. 뒤돌아서서 시퍼런 하늘을 쳐다본다.

「......뭐, 그렇지. 쉽게 되찾을 수 있는걸 잃어버린 기억은 없구나.

  내년에 보자, 후타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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