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코네 성을 보고 나오니 2시 경.
비와호는 이미 둘러보았고, 사와야마 산성 터는 히코네 성 천수각에서 건너다보았다.
히코네까지 전철을 타고 지나쳐온 평범한 주택가에 직접 가보고 싶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기왕 가는거라면 목적지가 있으면 더 좋겠지. 성지로 유명하다는 토요사토 소학교를 목적지로.
그렇게 별 생각없이 시작했던 일정이 이번 7박 8일 일본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이 되었다.

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적하다. 좌측통행만 지키면 자전거 타고 가도 문제가 없다.
마마챠리였지만 크게 무리가 가는 거리는 아니었다.

이름모를 강가를 건너며 서둘러 페달을 밟는다.

매체에서 자주 접한... 이런 모습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싱그러운 들판. 즐거운 기분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새 도착한 토요사토 소학교.

사실 이곳은 구교사로, 바로 뒤편에 현재 운영중인 토요사토 소학교 (신교사) 가 있다.
이 건물은 100여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법이 개정되며 내진설계가 미비한 학교건물은 사용이 금지되어
구교사가 되었지만, 철거되지 않고 졸업생들과 지역 사람들의 여러 기여를 통해 전시관으로 운용되고 있다.
오랜 기간 운영된 학교이니만큼, 이곳에 추억이 있는 졸업생도 무척 많을 것이다.




과연 이름이 날 만큼 인상적인 학교다.
사실 관광객 입장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현지 초등학교 건물을 들어가보는건 어려운 일인데,
전시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3층에 가니 이런게 있었다.
이 학교는 여러 매체에서 로케지로 쓰였지만 가장 유명한건 역시 케이온! 으로,
3층 음악실은 작중 내내 등장하는 주요 장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이곳만은 애니메이션 속의 모습과 똑같이 재현되어 있었다.

작중 삽입곡의 악보와 보기드문 61키 피아노.

항상 먹방찍던 모습.

가장 인상깊었던 화이트보드.
天使に触れたよ!의 가사.
離れていても同じ空を見上げてユニゾンでまた歌おう!

그래서 옆방에선 케이온! 을 보고 밴드를 결성한 사람들이 10여명 모여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한 켠에 이렇게 기타를 놓아둔 채.
이런 아무것도 없는 시골 한구석 구교사에서,
방영한지 13년 된 애니메이션을 쫒아
평일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밴드활동을 하고 있었다.
밴드명은 아마란스 서머アマランスサマー
충격적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만은 어떻게든 전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을 다해 힘낼 수 있다는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당신들은 본인들을 겁쟁이臆病者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이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따로 DM을 보냈다.
그저, 힘내라고 해주고 싶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교문을 나와 담배를 피우다가 다시 들어가 전시관을 찾았다.
입구에 히나마츠리 특별전이 열려있어 대충 보고 나왔는데, 알고보니 안쪽에 이런게 있었다.
케이온! 팬들의 기증으로 이루어진 어이없는 규모의 전시관...

기성품이 아닌 손수 제작한 굿즈도 꽤 보인다.

신사는 아니지만 에마가 있었다.
이정도 마음이 모였다면 이미 신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드럼도 충실하게 배치되어있다.

케이온! 이 연재된 역대 망가타임 키라라.

2층에도 있다. 기타는 끝이 없다.
300여대가 넘는다고 한다. 커스텀 기타도 종종 보인다.

포토존도 구비되어 있다.

마음을 다해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솔직히 말해 케이온! 은 그렇게까지 감명깊게 본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 찾아올 때도 자전거 여행 도중 겸사겸사... 였는데,
이곳에 모인 케이온! 을 향한 마음의 조각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전에 본 히코네 성과 이시다 미츠나리의 인상이 희미해질 정도로...

폐관시간까지 아슬아슬하게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날이 어두워지면 큰일이다. 페달을 서둘러 밟았다.
찾아올 때보다 훨씬 페달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마음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초심을 잃고 싶지 않다.
충격적이고, 놀랍고, 경외와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최고의 장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