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토에서 전철을 타고 히에이잔사카모토역比叡山坂本駅으로.
교토역에서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날씨는 우중충하다. 출발할 즈음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역에서 30분 정도 걸어올라가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좌우 곳곳에 사찰이 보인다.

예로부터 엔랴쿠지로 향하는 순례객이나 방문객이 많기도 했고,
비와호를 끼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유도 있어 사카모토坂本 거리가 발달했다.

케이블카 정류장 근처, 매우 뜬금없는 위치에 자리한 고등학교.
여기 다니면 체력은 좋겠군... 거제고등학교 생각난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게 된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게 된다.
주행시간은 10분이지만 경사가 상당히 급격하다.
이런걸 잘도 1920년대에 부설했구나 싶다.

타기 전에는 왕복 1600엔이 다소 아깝게 느껴졌지만

창밖에 내다보이는 비와호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좌우로 펼쳐지는 삼림을 보고 있자니 이걸 설치한 수고에 비해서는 저렴한 비용이다 싶었다.
이걸 도보로 걸어올라가야 한다면 엔랴쿠지 당일치기는 도저히 무리겠지...

케이블카 타고 내리면 전망대가 있다.
다들 사진부터 찍는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경치.

10분 정도 더 걸어들어가야 엔랴쿠지가 있다.

경내. 날씨가 차츰 개어간다.
그럭저럭 사람은 있는데, 역시 산속이라 상당히 추웠다.
어제까지 25도 더위였는데 느닷없이 영하의 칼바람...

본당인 근본중당根本中堂은 유감스럽게도 수리중이었다.

바로 옆 문수루文殊楼로 향했다.
마침 소문으로 들은 장보고비가 있었다.
과거 엔랴쿠지 소속 승려들이 당에 가려는데 해적이 들끓어 장보고에게 신세를 졌던 일이 있다한다.
뜬금없는 장보고비의 연유는 그리된것...
8~9세기 동북아시아 해상무역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다.
이후 동북아시아가 아수라장이 되면서 생각보다는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이곳 문수루文殊楼는 엔닌円仁이 창건했다 알려진 곳으로,
엔닌이 중국 오대산의 문수루를 보고 와서 참고하여 만들었다고 전한다.

근본중당은 수리중이지만 입장은 가능했다.
먼저 배향을 할 수 있고, 그 다음으로 수리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시간으로 작업자들이 신중하게 한땀 한땀 작업을 하고 있다.
위 사진과 같이 수리과정 다큐멘터리가 여기저기에서 방영중이다.

기왕 수리중인거 이렇게 현대미술 (락밴드의 앨범자켓) 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
수리중이라서 못 봤다, 운이 없다... 이런게 아니라,
수리중일 때만 가능한 형태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아이디어와 실행력, 그 근간에 깔려있는 문화재에 대한 진심이 인상깊었다.

근본중당 뒤쪽 산 올라가는 길의 호시미네이나리신사星峰稲荷神社.
이런 신불습합의 모습도 재미있다.
하긴 엔랴쿠지 창건 이전에도 히에이 산은 영산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석물을 보나 색깔을 보나 완전히 이나리 신사다.

언덕길을 올라가니 근본중당을 내려다보는 동상이 있다.

수리가 잘 되고있나... 불법은 잘 지켜지고 있나... 초심은 여전한가...
동상의 주인은 사이쵸 대사伝教大師로 8세기 일본 천태종의 개조로 꼽힌다.
바로 이곳 히에이 산에서 대장경을 독파했고 히에이 산에서 입적한 승려다.

다음으로는 대강당.
말 그대로, 이곳 엔랴쿠지 동탑에서 가장 큰 강당이다.
무언가 강할 일이 있으면 이곳에서 했을 터.

군데군데 이렇게 깨알같은 일화도 적혀있다.

시간상 동탑을 어느정도 둘러봤다고 판단, 서탑으로 가는 길.
좌우로 엔랴쿠지의 역사에 대한 소개문들이 삽화와 함께 적혀있다.
엔랴쿠지에 대해 잘 모르고 오더라도 이걸 보고 파악이 가능할 정도의 디테일.

이곳은 천태종 사찰이니만큼 한국, 중국에 현존하는 천태종 사찰들과도 밀접한 교류를 맺고 있다.
교토 중심부에 자리잡은 정토진종 혼간지와의 차이점이 이런 부분.
유감스럽게도 초심을 잃고 타락하여 제멋대로 굴기 시작한 시기도 고려 천태종과 비슷하다.
이쪽이 더한층 제멋대로였지만...
그런 과오 때문인지 지금은 세계평화와 불법수호에 대한 캐치프레이즈가 곳곳에 보였다.

그런데 서탑으로 가는 셔틀버스가 동계운휴중이었다.
도보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유감스럽지만 서탑은 다음에 가야...
엔랴쿠지는 크게 동탑東塔, 서탑西塔, 횡천横川 세 구역으로 나뉘어있는데,
히에이 산 전체에 흩어져있기 때문에 다 돌아보는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셔틀버스를 통해 서탑까지는 보려고 했는데... 아쉽다.

시간이 없어서 스킵한 동탑을 자세히 둘러보기로 했다.
튀르키예 대지진 의연금을 모으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에 화창하게 개어서 무척 청명하다.
청명한건 좋은데 상당히 추웠다...

건너편은 대서원大書院. 말 그대로 경전을 모아둔 곳이다.
이곳은 천태종 사찰이니 어찌보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곳이다.


잠깐 들어가본 엔랴쿠지 회관.
놀랍게도 호텔이었다. 소박하지만 위치가 정말 좋다.
호텔 객실에서 비와호 내려다보는 경치가 기가 막힐 듯한데 과연 그걸로 홍보중이었다.

쇼와, 헤이세이 덴노가 자고 갔다고 호텔 입구에 세워둔 기념비...

이제 슬슬 하산하기로 한다.
이곳 삼림은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말로 자아내기 힘들 만큼 규모가 장대하다.
일본 옛말에 겨울의 산은 신의 영역이라고도 하던데, 과연 그랬다.

아까 올라왔을 때와 달리 전망대 경치가 푸르르다.

사실 엔랴쿠지 말고도 이곳엔 여러 사찰이 산재해있다.
하나하나 둘러보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사찰 입구인데 토리이가 있는 것도 재밌지만, 사카모토 올라오는 길에 이미 토리이를 지나왔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내다보이는 오쓰 시.

엔랴쿠지의 승려들이 행했다는 10년간의 고행이 유명하지만,
굳이 고행을 하지 않아도 여기에 사는 것 자체가 고행일지도 모르겠다.
산은 깊고 바람은 차다.


케이블카 타고 하산하면서 보는 삼림 역시 절경이다.

엔랴쿠지로 오르는 길 초입에 있는 히요시타이샤日吉大社.
위치상 엔랴쿠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신사다.


슬슬 내려간다. 무척 화창해졌다.
엔랴쿠지뿐만 아니라 여길 거니는 것 자체도 즐거운 시간이 된다.

토리이를 나서며.
다음에는 서탑도 둘러봐야겠다.

중간중간 이런 신사나 사찰은 셀 수 없을 만큼 산재해 있다.

전철을 타고 교토로 돌아가는 길.
오쓰도 화창하게 개었다.
천태종은 현대에서 어떤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본인들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오늘 하루 날씨의 변화를 상기하며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야마구치구미와 관련이 있다는 흉흉한 뉴스보도를 십몇년 전에 본 것 같은데...
왜 노부나가에 의해 불탔는지 잊어버렸다는 일침도...
과오가 있다면 고쳐나가며 조용히 수행하는 것이 역시 이곳의 의의 아닐까.
적어도 엔랴쿠지에 잠시 있는 사이에 나는 인생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