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式会社タナカショク|「伝統と挑戦」高知のこだわり豆腐 (tanakashoku.jp)
株式会社タナカショク|「伝統と挑戦」高知のこだわり豆腐
高知の豆腐製造会社 タナカショク の公式サイトです。豆腐づくりのこだわり、商品紹介、お豆腐レシピの他、おつまみ豆腐百一珍を紹介しています。高知では、「深層水豆腐のタナカショ
www.tanakashoku.jp
위 링크는 고치高知현에서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재현하여 판매하는 기업이다.
고치 현의 두부는 일본의 다른 지역과 달리 상당히 딱딱한 것이 특징으로,
캐치볼을 해도 된다는 농담이 오고갈 정도라고 하는데,
외형을 보아서는 어째 낯익은 데가 있다.
KBS韓国放送公社様の「唐人豆腐」の取材 | 株式会社タナカショク (tanakashoku.jp)
KBS韓国放送公社様の「唐人豆腐」の取材 | 株式会社タナカショク
本日韓国の【KBS韓国放送公社】様が朝鮮半島由来の「唐人豆腐」の取材に来られていました。実は高知県のお豆腐は先の(文禄・慶長の役で土佐の武将、長宗我部元親公が捕虜として【朴 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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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나름의 곡절이 있는데,
이미 위 링크대로 KBS에서 취재한 적이 있듯이
고치 현 전통두부의 제조방식에 조선인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경주에서 포로로 잡혀 쵸소카베의 영지였던 당시의 토사土佐국 우라도 성 성하마을에서 살았던
아키츠키 타네노부秋月種信, 통칭 아키츠키 쵸자에몬秋月長左衛門 (한국명 박원혁) 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아키츠키 타네노부가 토사국에서 살게 된 것은 12세 때로,
부친인 박호인朴好仁은 경주에서 전투지휘 중 포로로 잡힌 것으로 보아 경주의 무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들은 쵸소카베, 그리고 세키가하라 이후 토사국 다이묘가 된 야마우치 카즈토요山内一豊로부터
신분을 보장받고 성하마을 내지 외국인 마을(토진마치唐人町)에서 살아간 것으로 보이는데,
부친인 박호인은 1617년 조선통신사와 함께 조선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아키츠키 타네노부는 12세 때 넘어와서인지,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대로 토사국에 남아 토진마치에서 두부를 팔았고, 다이묘로부터 독점판매권을 보장받았다는 전승이다.
아키츠키 타네노부의 묘는 고치 현 히츠잔 공원筆山公園의 야마우치가 묘지에 있는 모양이다.
(『土佐の墓』その2、山本泰三著、土佐史談会、 1987年 (K282-14 / 1102235569)
마침 바로 맞은편이 고치현 토진마치다.
'고치현 전통 방식의 두부를 재현'한다는 기업 사이트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키츠키 타네노부에 대한 전승은 400년 전 이야기라 구체적인 전말은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
고치현에 도토리묵이 전해내려오기도 하는 등 조선인과 관련된 전승이 있으니만큼
그리고 전승의 내용이 그럭저럭 역사적 배경과 앞뒤는 맞으니 그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와 별개로 고치현에는 아직도 두부전문점이 여러군데 있는 모양이니
고치현을 방문하게 되면 한번쯤 찾아가봄직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박원혁이 아키츠키秋月 성을 칭한 것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부친인 박호인이 치쿠젠筑前의 아키츠키성秋月城 성주였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포로를 잡으면 일단은 규슈로 끌고 왔을테니 앞뒤가 안맞는 것은 아니지만,
토사국으로 이동했다는 전승과 상충하기 때문에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박호인이 조선에서 포로로 잡힐 때 적장의 성이 아키츠키秋月였고
신분을 보장받는 과정에서 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아키츠키성터秋月城跡 근처에서 아키츠키 두부점이라는 가게가 영업중이라는 것이다.
가게 사이트를 보아서는 가게 주인장이 위 내용들을 알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승은 전승일 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걸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자이후에 언제쯤 한번 가봐야 할테니 겸사겸사 식사도 해결할 겸 들러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