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 2024. 11. 25. 00:00

스와 엔츄諏訪円忠

스와 엔츄諏訪円忠 (1295~1364) 는 스와신화의 기원 및 연중제례에 대해 기술한 스와다이묘진에코토바諏方大明神画詞의 집필자로,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의 겐무 신정에 발탁된 한편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에 의해 발탁되어 호코슈奉公衆직에 오른 교토 스와씨京都諏訪氏의 시조이다.

 

스와 출생으로, 스와대사 카미샤의 방계인 오사카씨小坂氏로, 숙부가 가마쿠라 막부의 봉행인이었던 관계로 양자가 되어 가마쿠라에서 원복元服했다. 그러나 호죠씨北条氏의 멸망 이후 상락上洛하여 혼란기의 교토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호코슈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연구결과에 따르면 겐무 신정 과정에서 양성되었던 행정직 사무라이들의 조직과 경험을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스와 엔츄 역시 텐류지天竜寺의 건설행정관을 맡는 등 활약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나카센다이의 난中先代の乱의 전화로 쇠락한 스와 종가의 재흥에 조력하는 한편 1356년에는 스와다이묘진에코토바를 완성하여 교토에 스와 신앙을 퍼뜨렸다 전한다.

 

스와다이묘진에코토바는 스와신사의 기원과 스와묘진에 대해 다룬 엔키縁起 5권, 스와대사 카미샤 및 시모샤의 연중제례를 다룬 스와제諏方祭 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와 엔츄를 기원으로 하는 교토 스와씨의 호코슈직은 무로마치 막부 내내 세습되었으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로부터 탄자쿠를 받아 교토의 스와신사에 봉납한 등의 기록이 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의 교토행을 호위하기도 했으나, 무로마치 막부 멸망 후에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에게 협력했다. 그러나 1582년 야마자키 전투에서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패배하여 멸족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스와 엔츄는 무로마치 막부의 행정관이었던 만큼 선종 사원 관련 업무도 수행하였는데, 그 일환이었는지 스와대사 카미샤 마에미야諏訪大社上社前宮 근처, 오오호리大祝 가문 저택과 가까운 곳에 안코쿠지安国寺를 설립하여, 근처에는 히가시오오마치東大町, 니시오오마치西大町 등의 몬젠마치門前町가 펼쳐져있었다 한다. 스와 엔츄가 텐류지의 건설행정관을 맡았던 만큼 당시의 안코쿠지 역시 텐류지와 마찬가지로 임제종 텐류지파 사찰이었다.

1480년 스와대사 카미샤와 시모샤 간의 대립으로 인한 전화 및 1482년 미야가와의 대범람으로 사찰 인근이 황폐화되었다. 이후 1542년, 다케다 신겐의 침공으로 인한 미야가와 전투에서 다시 한 번 전화에 휩싸였다. 안에이安永 연간 (1772~1781) 번주에 의해 현재 위치로 이전되어, 그 과정에서 교토의 묘신지妙心寺파로 개종되어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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