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케이한우지역으로 온 참.
먼저 우지바시. 다리의 유래를 알리는 간판과 무라사키 시키부 동상 등이 있었다.

교토 남쪽 입구에 위치하는 우지시의 지리적 여건과 더불어,
꽤 넓은 강폭을 보면 이곳이 일본의 고대~중세에 어떤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가졌을지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먼저 뵤도인平等院.
10엔 동전 뒷면에 나오는 봉황당으로 유명한 곳.
처음에는 998년 미나모토노 시게노부의 교외 별장격으로 마련된 부지였다 한다.
그랬던 것을 후지와라노 미치나가가 구매, 그의 아들인 후지와라노 요리미치가 1052년에 사찰로 바꾸었다 전한다.
속세와는 격절된 일종의 극락정토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경주 불국사와 그 취지가 닮아있다.
과연 아래쪽 호수에 비치는 봉황당과 고색창연한 기와, 금빛 봉황과 당시 켜져있었을 석등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다.

군데군데 잘 정비되어있지만 사실 교토 근방의 건물이 다 그렇듯 우여곡절이 많았다.
쿠스노키 마사시게가 놓은 불로 전각 대다수가 사라진 적도 있었고,
1698년 화재로 또다시 전각 대다수가 불타기도 했다.
위의 봉황당은 뵤도인의 전각 중 1052년 당시 모습이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로서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일정이 빠듯하다보니 급한 마음에 둘러보느라 봉황당 앞에서 느긋한 사색의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박물관도 빠짐없이 잘 정비되어 있었기에 한번 둘러보면서
우지의 사람들이 이곳에 대해 가져왔을 생각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곁에 마련된 미나모토노 요리마사의 무덤.
몰랐던 사실인데, 겐페이 합전 과정에서 우지가와 전투에서 패배한 미나모토노 요리마사가 이곳에서 할복했다 한다.
이는 일본사 최초의 유명한 할복사례로, 할복의 의미와 기원을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는 모양.


뵤도인을 나서서 먹었던 차소바.
면 색깔이 희한해서 의문을 품었지만 대단히 맛이 좋았다.
주인장도 친절하여 이후 행선지에 대해 이런저런 안내를 해주는 등 대단한 환대라 정말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행선지는 아마가세바시天ケ瀬橋.
우지가와 상류쪽으로 걷다보면 있는 한적한 다리인데, 여기까지 온데엔 이유가 있다.
윤동주가 대학시절, 치안유지법으로 체포되기 불과 2주 전에
친구들과 소풍삼아 놀러와 사진을 남기고 망중한을 보냈던 곳이 이곳이기 때문.


인적이 드물었다.
간간히 동네 사람만을 마주칠 수 있을 뿐.

지역 주민들이 남겨둔 윤동주 시비.
정치나 관광목적이 아닌, 기억과 이해의 비라는 제목 그대로 새겨둔 비석이라 더욱 뜻깊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찬찬히 비석을 살펴보며,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을 한번 되새기며 담배를 머금는 시간을 가졌다.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중국 동북부 (구 만주)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났다. 문학에 뜻을 두고 일본통치하의 조선에서 수학하여, 1942년 도쿄의 릿쿄 대학으로 유학하고 도시샤 대학으로 전학하였다. 재학중, 학우들과 함께 우지가와를 찾은 윤동주는 아마가세바시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우지가와에서 식사를 즐기며 아리랑을 부르는 등 청춘의 한 자락을 보냈다.
그러나, 1943년 7월 조선독립운동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치안유지법위반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1945년 2월 16일 27세의 나이로 옥사하였다.
1948년, 한국에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되어, 이윽고 일본어로 번역되어 시인 윤동주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04년, 국제연합이 5월 8일과 9일을 「제2차 세계대전중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한 추도와 화해의 날」로 결의했다.
우리들은 그 결의를 존중하며, 자기표현의 길을 열어젖힌 시인 윤동주가 살았던 발자취를 미래에 전하기 위해, 그의 시 「새로운 길」을 새긴 이 비석을 이 땅에 건립한다.
2017년 10월 28일
시인 윤동주
기념비건립위원회

다음으로는 우지가미 신사.
이즈음부터 하늘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본디 이곳의 토착신앙은 우지가미 신사 부근이고, 이후 뵤도인이 지어졌음을
시기적으로나 뵤도인의 위치를 보나 알 수 있다.
뵤도인과는 달리 조용한 우지가미 신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후지와라도 떠올리고, 헤이지의 난도 떠올리고, 쿠스노키 마사시게도 떠올리고,
윤동주도 떠올리고, 맛있는 차소바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지는 반나절로는 도저히 부족한 것 같다. 어딜 가나 그렇지만...
곳곳에 유포니엄 일러스트도 붙어있던데 그것 때문에라도 다시 오게 될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