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즈이센지瑞泉寺, 로쿠죠가하라六条ヶ原

교토 즈이센지瑞泉寺.

도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 일족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관련 기록과 보도자료 등이 입구 쪽에 전시되어있다.

 

 

 

 

 

 

 

 

 

 

 

 

욕심 같아서는 아즈치를 간 뒤 오미하치만에 들러 히데츠구의 족적을 보고 싶었다.

히데츠구의 영지가 오미하치만이었기 때문에... 아즈치에서 가깝기도 하고...

 

 

처음에는 조카인 히데츠구를 후계로 삼을 작정이었던 히데요시는,

당초 구상에 따라 히데츠구에게 관백関白 자리를 물려주고 태합太閤이 되었지만

축복인지 저주인지 말년에 아들 히데요리秀頼를 얻고 생각이 바뀐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조카보다는 친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

히데요리가 장성하기 전에 본인이 죽을지도 모르니, 그때즈음엔 30대 절정을 맞이할 히데츠구가

과연 히데요리를 보살펴줄 것인지 아니면 칼을 들이댈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히데츠구를 숙청했다.

히데츠구는 관백 자리를 반납하고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할복할 수밖에 없었다.

히데츠구뿐만 아니라, 새 시대의 관백과 친분을 쌓기 위해 각지의 다이묘들이 히데츠구에게 보냈던

수많은 측실과 하인, 자녀, 중신들까지 전부 다 처형했다. 처형된 일가의 숫자는 30여명이었다 한다.

히데츠구와 가까운 관계였던 다이묘들은 유배, 근신, 영지 몰수 등의 처분을 받아

그 결과 히데요시가 인심을 크게 잃는 계기가 되어 세키가하라의 판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처형당한 일가를 상징하는 듯한 불상들.

 

 

 

 

 

 

 

 

 

 

 

 

히데츠구는 고야 산에서 할복했고, 이후 산죠가하라三条ヶ原에 효수되었다.

일가족은 효수된 히데츠구의 수급 앞에서 처형되었다.

시체는 대강 한 구덩이에 밀어넣었는데 이를 히데츠구 악역총秀次悪逆塚이라 불렀으나,

카모가와의 범람으로 황폐화된 뒤 1611년 발견되어 이들의 명복을 기리는 의미에서 즈이센지가 건립되었다.

 

물론 도쿠가와 막부의 히데요시 폄훼 목적도 있었겠지만,

교토 민심 역시 당대부터 히데츠구에게 동정적이었던 모양이다.

 

 

 

 

 

 

 

 

 

 

 

 

카모가와를 따라 조금 내려와서, 로쿠죠가하라六条ヶ原.

 

 

 

 

 

 

 

 

 

 

 

 

 

날씨가 참 좋았다.

 

이곳은 세키가하라 전투 전후처리 과정에서

서군의 이시다 미츠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안코쿠지 에케이 3인이 처형당한 곳이다.

 

히데츠구 숙청을 비롯 말년의 실책들로 인해 인심을 잃은 결과

히데요시 사후 불과 2년만에 도쿠가와가 천하인이 되었고

치밀한 이에야스는 천천히 후계구도를 굳히고 자기보다도 어린 히데요리파 다이묘들이 죽기를 기다리며

혹은 한명씩 차례차례 배제해가며 1615년 오사카 전투로 히데요리를 제거한다.

제거하는 김에 오사카 성에 모인 10만명 이상의 낭인들도 함께... 불안요소를 깔끔하게 제거...

 

결국 아즈치 성 -> 즈이센지 -> 세키가하라 -> 히코네 성 -> 로쿠죠가하라 같은 느낌으로 보고 온 셈...

날씨가 지나치게 좋은 탓에 구태여 평온한 교토의 샛길寄り道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주워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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