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진다는 것.
"이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지 마라."
- 이노우에 타케히코 작 「리얼」
"한 경기를 졌을 뿐. 앞으로도 수많은 경기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면 너는 연전연승 죽을 때까지 웃기만 하는 그런 인생을 바라나."
- 아다치 미츠루 작 「H2」
"명국은 천재 한 사람의 손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천재가 필요하다."
- 홋타 유미 작 「히카루의 바둑」
사제지간의 감정을 다루는 대중영합적인 영화는 아닐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승부란 무엇인지, 모든 것을 건다는건 무엇인지. 조훈현은 내제자가 독립해 나가는 날에도 바둑판을 쓰다듬고, 조훈현이 마침내 타이틀 하나를 따내 그동안의 앙금이 해소된 날에도 이창호는 혼자 머릿속으로 복기를 하고 있다. 일견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는 승부에 대한 천착을 다룬 영화는 「히카루의 바둑」의 후반부에서 다룬 내용으로 마무리를 지어간다. 승부란 끝이 없고 조훈현 이전에 세고에 겐사쿠가 있었듯이 아득히 먼 옛날로부터 수많은 승부가 벌어지며 어딘가의 지점으로 나아가는 세월의 흐름을 바둑으로 칭하고 있다. 「히카루의 바둑」도 「승부」도 90년대 한국기원을 취재하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착지점이다.
승패란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승자는 이길 만해서 승자가 된다.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선후천적인 재능, 재력, 시간이 그것이다. 패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모든 사람은 각자 가진 요인 중 유리점을 찾아 승부의 장소를 바꾼다. 본인의 재능을 믿는 사람은 재능의 영향이 큰 종목을, 재력이 있는 사람은 재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종목을, 남은 시간이 많은 사람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한 종목을 고른다.
그러나 옛말에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하듯이, 결국 천외천은 있고 어떤 종목이든 단 한명의 승자 이외에는 모두 패자가 된다. 어느 지점에서 납득하고 멈출 것인가, 그것은 사람 나름이지만, 멈추면 이길 수 없게 된다. 그 지점이 그 사람의 한계가 된다.
"아직 재능이 있을 때 제자를 들이시오. 그렇지 않으면, 재능이 당신을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천재를 연기해야 하니까."
- 노기자카 타로 작 「의룡」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 이창호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세돌과 구리에게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승부의 장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알파고가 등장하자 알파고의 기풍이 전성기 이창호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평이 쏟아졌다. 한편 신진기예들은 알파고를 보고 배우고 분석하며 각자 답을 내리기 시작했다. 흔히 알려진 오해와는 달리, 알파고도 모든 경우의 수를 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에 한없이 가까울지언정 정답이라 단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답을 찾아 무엇이 정답에 더 근접해있는지. 패자, 혹은 관전자의 입장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쫒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오랜만에 접한 깊이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