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에 소재한 신숭겸장군묘.
공식명칭은 시호인 장절공을 따서 신장절공묘역으로 되어있다.
오후였지만 종일 방문객이 없었던건지 주차장은 쌓인 눈 위로 나무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우고 있었다.

평산 신씨 가문에서 대대로 관리해왔기 때문에 이런저런 건물이 곁으로 딸려있다.
삼한벽상공신의 필두였던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내내 관리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모양.


공산 전투 당시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건과 옷을 바꿔입고 대신 죽은 일화로 유명하다.
원래 이곳 묘역은 왕건이 본인 묫자리로 봐둔 명당이었는데,
공산 전투 수습 후 크게 슬퍼하며 신숭겸의 묘를 이곳에 쓰라고 지시한 모양.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가묘 2개를 포함 3개의 봉분을 세워둔 것도 특이사항이다.

원래 왕건의 왕릉 자리였기 때문에 명당임은 물론이고 왕릉에 준하는 여러 형식이 갖추어져있지만,
봉분 근처에 석물이 없다는 것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신하의 무덤임에도 왕릉에 준하는 격으로 형성된 다른 예로는 김유신장군묘가 있고 아직도 경주에 보존되어 있는데,
신라에 있어 김유신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하면 고려에 있어 신숭겸의 중요성이 짐작이 된다.

춘천시내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거리에 한겨울이다보니 묘역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잠시 들렀다 왔지만 생각이 정리되고 구체화되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