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입구에 있는 사천조명군총.
임진왜란 당시 이곳 선진리성은 조명연합군 대 일본군의 격전지였는데,
당시 전사자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데 묻어 이렇게 봉분이 남아있다.


조금 더 걸어들어가면 선진리성이 있다.
좌측 사진이 복원 엉망으로 한걸로 유명한 출입구인데 (...)
히메지성을 그대로 복붙하다보니, 전시에는 만들 여유가 없었을 하얀 석회벽 및
목조 문에는 뜬금없이 이케다池田 가문의 가몬을 박아넣는 등...
성벽도 중간중간 돌을 아무렇게나 집어넣는 등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사적지로서 크게 참고가 되는 곳은 아니다.

그래도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여겨지는 천수기단.
이곳은 정유재란 당시 울산왜성, 순천왜성과 함께 삼굴三窟로 불렸던 곳으로,
결국 정유재란이 끝날 때까지 함락되지 않았던 곳이다.
쵸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와 모리 카츠노부毛利勝信가 축성하고,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주둔했던 곳으로, 노량해전으로 이어진다.

천수기단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박혀있는 충령비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비문을 읽어보니 6.25 당시 인근 지리산 공비토벌 과정에서 순국한 사람들을 위한 비석인 모양이다.
시대적으로 떨어져 있기도 하고, 1950년대의 한국인들이 딱히 왜성을 보존하거나 이해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좀 뜬금없는 위치선정은 아닌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일제시대에 시마즈 요시히로의 자손들이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두었던 모양이다.
그걸 철거하고 그 자리에 충령비를 세운 모양.

천수기단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과연 절묘한 위치다.
대개의 왜성이 그렇지만, 이곳 역시 임진왜란 이전에도 조병창 등으로 오랜 기간 활용되어온 자리다.

혼마루에 널찍이 벚꽃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봄이 되면 선진리성은 벚꽃 명소로 인파가 붐빈다 한다.
인근 초등학교의 단골 소풍지역일듯...
이 역시, 일제시대 때 이미 공원으로 단장되었던 모양이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이곳에서 퇴각하는 과정에서 노량해전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휘하 병력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의 피해가 심각했던 건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불과 15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게 되는데,
임진왜란 당시 동원했던 15000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편, 시마즈는 조선에서 도공을 대거 납치한 것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지금도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가고시마에서 살아가고 있다.
조선에서의 악명과 달리 부하들 사이에선 깊은 신뢰를 받은건지,
노량해전 때도 그랬고, 세키가하라 때도 그랬지만 시마즈는 패주시 대단히 특이한 전법으로 유명하다.
일명 스테가마리捨て奸라고 하는 이 전법은 본진이 도주하는 사이 몇 명이 후미에 남아
적군을 저격 후 돌격하여 시간을 끄는 전법으로, 당연히 후미에 남은 병사들은 무조건 사망하게 된다.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을 저격한 병사도 시마즈 소속이라 하니...
또 한편, 시마즈의 사츠마 번은 에도 시대 내내 다이묘의 지위를 유지하여 메이지 유신의 한 축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