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시간을 달려 고흥군에 도착해서 우선 식사할 곳을 찾아.
무척이나 한적한 곳이었다.

무난한 제육볶음 취식.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버스터미널.
지리적으로 벌교를 거치기 쉬운 고흥반도다보니 벌교 지명이 눈에 띈다.

잠시 들른 고흥 발포만호성.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되기 10여년 전 만호로 부임했던 곳이다.


1970년대에 조성된 충무사.
내려다보는 항구 전경이 그럴듯하다.

뜻밖에 그럭저럭 잘 보전되어 있었던 성벽 유구.


녹동항으로 가는 길에 인상적인 갯벌과 간척지를 지나쳤다.
이때는 그냥 인상적이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다음날 박물관의 전시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주워섬기게 된다.

하루 신세를 진 녹동항 해수온천.
온천 무제한에 1박 5만원이라 무난하게 잘 쉬다 왔다.

녹동항의 저녁노을.
저 건너편이 소록도로, 가장 가까운 곳은 불과 직선거리 700m에 가닿을 수 있다.

저녁으로 녹동항 명물 장어를...
하모 (갯장어) 는 제철이 아니라 아쉽게 먹지 못하고 대신 붕장어를...
장어보다는 오히려 밑반찬이 기억에 남았다. 봄동김치라던지...


다음날 아침.
소록도로 출발하기 전에 근처 마리안느와 마가렛 나눔연수원에 들렀다.


고흥 특산 유자차 맛도 괜찮고,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있게끔 방문객을 위해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이 소록도에서 42년간 간호봉사를 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이어서 소록도.
소록대교를 건너면 거의 곧바로 진입하는 길이 있다.
진입하고 나면 외부인은 반드시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한다.

저쪽 건너편에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 그리고 일본식 신사가 남아있는데
아쉽지만 외부인 출입금지였다.

주차장에서 박물관까지 이렇게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미관 차원에서 조성했다기보다, 이쪽 길이 아니면 출입이 안 되는 느낌.


아쉬움을 달래듯 이렇게 데크길에서 사적지에 대한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

데크길을 다 지나올 때쯤 자리한 애한의 추모비.
해방 직후에 있었던 사건으로, 哀恨 이외에는 할 말이 없는 사건을 추모하고 있다.
외부인 출입금지구역이 많은 이유는 이를 통해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박물관의 전시물 중 하나.
누빔옷 하나에 담긴 사연이 묵묵히 적혀있다.

소록도내 학교 졸업식 때 남겨진 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연로하여 소록도를 떠나며 환자들에게 남긴 편지.

소록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게 된다.
어떤 말을 주워섬겨도 타자화가 되어버릴 것 같아 조심스럽다.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은 그런 소록도의 생활상과 여러 사연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전시하고 있는 내용은 한센병에 대한 역사다.
어떤 병인지, 어떻게 전염되며, 치료와 예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그를 통해, 사실은 아직도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일반적인 편견,
즉 한센병은 난치병 내지 불치병에 가까우며 쉽게 전염된다는 편견
따라서 한센병자를 소록도에 수용하는 국가행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편견을 전시를 통해 반박하고 있다.
그런 국가행정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소록도와 유사한 수용시설이 동시기 일본, 대만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서면 건너편에 보이는 원생자치회.
원생이란 소록도의 국립병원에 수용된 한센병자를 뜻한다.

박물관을 나서면 중앙공원 쪽을 돌아볼 수 있다.
퍽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 있지만, 박물관의 전시물을 보고 왔다면 맘편히 즐길 수는 없는 공간이다.


검시실.
한센병자들 사이에서는 한센병자는 3번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한다.
죽음 그 자체, 검시실에서의 해부, 그리고 화장.
연기가 된 다음에야 소록도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감금실.
원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곳에서 감금, 체벌 등이 이루어졌으며
출감 시에는 예외없이 단종수술이 이루어졌다.
소록도의 목적이 한센병자의 격리 및 치유라는 것은 표면일 따름이다.


중앙공원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한센병자들 사이에서 "죽어도 놓고 바위"로 불렸던 것으로,
이곳의 여러 나무 및 기암괴석은 아시아 각지에서 실어날려진 것으로
소록도 해변가에서 한센병자들이 직접 이곳까지 들고 와 식재한 것이다.
물론 자발적이었을 리는 없고 원장에 의한 조직적인 강제동원이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이곳 수탄장은 말 그대로 수심과 탄식의 장소로,
한센병자들과 그들의 2세들은 함께 살 수 없고, 1달에 1번 면회를 허용하되
위 사진과 같이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 서로 이름을 부르다 헤어진다 하여 수탄장으로 이름붙었다.
한센병은 어떻게 전염되는지, 유전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런 사항들은 박물관에 모두 전시되어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그런 한센병에 대한 지식이 발견되고 또 전파된 시기와
수탄장, 단종수술 등이 시행되고 또 유지된 시기 사이에 시간차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조치가 아니었다.
먼저 인식이 존재하고, 국가행정에 의해 조치가 취해지며
이후 그 조치는 국가행정 스스로, 그리고 소속원에 의해 정당화된다.

소록도에 가기 전 AI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명치를 여러 차례 맞았기 때문에 첨부해둔다.
과연, 사회는 질병보다 외형을 기억한다.

어렵다. 나는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디까지 타자화를 멈출 수 있었을까.

소록도의 전시물을 둘러보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박지성공설운동장으로 향했다.
소록도는 차로 달리면 불과 3분만에 지나칠 수 있다.
녹동항까지는 겨우 700m. 어이가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돌짜장이란 메뉴를 먹었는데 과연 맛이 괜찮았다.

고흥반도 동남쪽을 거쳐 여수로 빠져나오는 길.
바다빛이 눈을 찌르듯 아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