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몇 번이나 한 층 일찍 멈췄다.
회사가 절반을 부담한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한다.
공기업에는 자체 수입이 있다.
법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몇 번이고 그 다음 질문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 돈은 어디서 오는데?
끝내 적자가 나면 누가 메우는데?
그 사실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으면 행동은 어떻게 바뀌는데?
이 질문을 한 번 더 하면, 같은 문장의 모습이 달라진다.
회사가 부담하는 돈은 회사 바깥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국가가 보장한다는 말은 재원이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공기업이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지 안전성을 뜻하지 않고, 그 조직의 비용 감각과 노동환경과 경영방식까지 바꾼다.
나는 종종 정확한 설명을 했는데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아마 정확성에는 층위가 있는 모양이다.
어떤 층위에서는 법적 지급자가 중요하고, 어떤 층위에서는 경제적 부담자가 중요하다. 어떤 층위에서는 돈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고, 더 내려가면 돈조차 사라지고 사람과 노동과 물건과 시간이 남는다.
그렇다고 언제나 끝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문제를 지구 핵까지 파고들 듯 설명한다면 아무 말도 끝낼 수 없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멈췄는지 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몇 번 멈췄고, 그때마다 한마디가 더 들어왔다.
“그 다음은?”
좋은 질문이었다.
아마 오래 기억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