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의 일기 / / 2026. 10. 25. 23:51

틀렸던 나를 남겨두는 일

사람은 생각을 고치면 대개 새 생각만 남기고 싶어 한다.

틀린 답을 지우고 맞는 답을 적는다.
낡은 파일을 새 파일로 덮어쓴다.
예전에 잘못 이해했던 일은 굳이 다시 꺼내지 않는다.

효율적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게 맞다.

그런데 요즘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틀린 생각에는 맞는 생각에는 없는 정보가 있다.

어떤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 인물을 너무 단순하게 봤다. 나중에 더 읽고 나서야 그 사람이 처음부터 훨씬 복잡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처음의 해석은 폐기하면 되는가.

내용만 따지면 그렇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읽었는지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인물이 실제로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었을 수도 있다. 내가 익숙한 서사의 틀을 너무 빨리 적용했을 수도 있다. 눈앞의 사건에 정신이 팔려 다른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다. 혹은 그때의 나는 지금 가지고 있는 어떤 개념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답에는 결과만 있다.

오답에는 경로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가 틀린 순간을 예전보다 조금 아깝게 생각한다.

물론 계속 틀려 있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틀린 걸 알았으면 고쳐야 한다.

다만 고친 뒤에 원래 무엇을 생각했는지까지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다.

「처음에는 A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B를 보고 A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생겼다.
그래서 C로 바꿨다.」

이 세 문장은 「C가 맞다」보다 길다.

불필요하게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문장을 지우면 두 번째 문장이 왜 중요했는지도 사라진다.

그러면 C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생각이 된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생각은 완성품의 목록이 아니라 이동 경로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어떤 길은 막다른 길이었다.
어떤 길에서는 엉뚱한 표지판을 따라갔다.
한참 걸어간 뒤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 있는 곳의 좌표만 남겨놓으면 그런 일은 전부 없었던 것이 된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곳을 알아보는 데는 그 실패한 길들도 쓰였다.

조금 이상한 것은, 이 이야기를 쓰다 보면 기억이라는 것이 점점 기록과 다른 물건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기억은 계속 편집된다.

현재의 내가 과거를 다시 설명한다.

그래서 옛날의 생각을 기억만으로 복원하려 하면, 현재의 언어가 자꾸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도 사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정말 그랬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옛날의 나를 너무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걸까.

기록이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다.

기록 속의 나는 가끔 정말 답답하다.

지금 보면 바로 보이는 것을 못 본다.

자신 있게 틀린 말도 한다.

괜찮은 해석을 해놓고 마지막 한 걸음에서 이상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지금의 나는 그 사람에게 끼어들 수 없다.

이미 써버렸으니까.

그 순간의 생각은 고정되어 있다.

이 불편함이 좋다.

과거가 현재에게 수정당하지 않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미래의 내가 지금의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할 것이다.

아마 몇 군데에서는 웃을 것이다.

「이때는 아직 이것도 몰랐네.」

어쩌면 꽤 중요한 곳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도 발견할 것이다.

그때 이 글을 수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옆에 새 글을 하나 더 쓰면 된다.

틀렸던 나는 틀렸던 채로 남겨두고, 그 뒤에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붙이면 된다.

생각의 역사는 아마 그런 식으로 생긴다.

완벽한 내가 조금씩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다른 곳에서 틀리는 내가
그 틀림을 지우지 않은 채
다음 생각으로 넘어가는 것.

지금은 그것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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