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 가는 길.
옥산서원, 양동마을은 서라벌의 문화재가 모여있는 중심지에서 꽤 거리가 떨어져있다.
그래서 여행코스에서 빠지는 경우가 잦은데, 따로 보기에 하루 코스로 넉넉한 곳이다.
경주에 사람 산게 신라시대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시대 유적지도 재미있는 곳이 많다.
여차하면 근처의 흥덕왕릉도 코스에 넣어도 되고...
옥산서원 역락문.
논어의 첫 구절인
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에서 딴 문이다.
지음知音을 찾는 것은 예로부터 어려웠지만,
또한 지음이기 때문에 먼 곳에서라도 찾아오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지음은 흔치 않지만, 그럼에도 가만 보면 곳곳에 있다.
德不孤必有隣...
옥산서원 전경.
옥산서원은 영남학파의 정신적 지주인 이언적을 추향하는 서원이다.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있으며, 조선시대 내내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기둥이었던 곳으로 의의가 있다.
구인당求仁堂.
인仁이란 무엇인가. 유학하는 선비라면 가장 먼저 되뇌일 구절일지도.
옥산서원에서 강의장으로 썼던 건물이다.
구인당에서 입구 쪽으로 내려다본 전경.
당시 유학에 대해 토론하던 선비들이 자주 보았을 광경일지도 모른다.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적인 사상체계 중 하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는 현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과거인 바,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지 않으면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구멍이 발생하게 된다.
역사교육에 있어서도 주리론이 어쩌고 이기이원론이 어쩌고 학자들 이름 외우게만 하지 말고
성리학이 어떤 것인지 대충 맛보기로라도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옥산서원 앞에는 계곡이 멋드러지게 펼쳐져 있다.
현재는 옥산서원 그 자체보다도 계곡에 피서오는 행락객도 많은 모양이다.
서원 근처답게 이런저런 고택들도 자리잡고 있다.
고택 중 몇몇은 숙박이 가능하게끔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1박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일 듯하다.
옥산서원 근처에 있는 국보 40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淨惠寺址 十三層石塔.
이름에서 알수 있듯 정혜사라는 절의 석탑이었는데, 정혜사는 현존하지 않고 석탑만 남아있다.
9세기 석탑으로, 때문인지 독특하게도 13층 구조다.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이 주위 자연에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언적이 젊은 시절 머물렀다는 독락당獨樂堂이 있는데,
당시에는 정혜사가 남아있어, 이언적이 정혜사에서 공부를 하며 여러 글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유감스럽게도 정혜사는 19세기에 화재로 사라졌다.
다음으로는 양동마을.
양동리에 있는 양반 집성촌이라 해서 양동마을이다.
이곳도 옥산서원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과거 역사를 체험해볼 수 있게끔 꾸며진 테마파크 형태의 민속촌과는 달리,
이곳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양반집성촌이다.
사람이 실거주하고 있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은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만큼,
양동마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것은 민속촌과는 일선을 달리한다 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 언덕이 있는데 마을 자체가 勿자 형태의 언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한채 한채가 아름답다.
서서히 해가 넘어간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곳에 사람이 산 건 조선시대 한정이 아니다.
무려 기원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 석관묘를 비롯 고분군도 보인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음즙벌국이 바로 이곳 일대가 아닌가 하는 학설이 유력하다.
현재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니만큼 여기저기 주차가 되어있다.
방문객으로서 조용히 여기저기 거닐며 VR체험을 하노라면 2~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서편으로 해가 완전히 넘어간다.
교토에도 아라시야마, 엔랴쿠지 등 시내 중심부에서 거리가 있는 문화유적들이 있듯이
경주에도 시내 중심부에서 거리가 있는 여러 문화유적들이 있다.
석굴암, 대왕암, 감은사지 등도 사실 거리가 꽤 있고...
경주 남산에는 이름없는 유적지가 즐비하여 또다른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들을 다 둘러보려면 사나흘로는 어림도 없다. 세월의 깊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