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에츠묘코를 행선지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죠에츠묘코에 도착해서 지선 묘코하네우마라인을 타고 카스가야마로 향하는 길.
원맨열차를 처음 봤는데 전철 내에 이런 시설이 있는게 생경하고 재밌었다.
전철문도 수동이고......
경치가 무척이나 좋았다.
사실 한국에는 이런 지방 소도시 재래선이 활성화된 곳이 거의 없어서......
새벽부터 서두르다보니 졸다가 그만 나오에츠역에 내려버렸다.
잠시 구경...
기왕 여기 내린거 그냥 카스가야마성까지 버스타고 갔으면 됐을텐데
지인 말을 한귀로 듣고 흘린 안일함과 멍청함으로 인해 안해도 될 고생을 하게 된다.
나오에츠역에서 카스가야마성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구글지도로는 안 나오니 참고...
아무튼 카스가야마역에 도착.
역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린센지 근처까지 오니 슬슬 분위기가 난다.
인근에 마련되어있는 자그마한 전시관.
먼저 카스가야마성 그림이 그려져있다.
다이쇼 1년 시기의 카스가야마성 사진.
카스가야마성에서 발굴된 유물들.
간단하게 둘러보고 린센지로 향하는 길에 있는 카스가신사春日神社.
여길 볼 시간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지나쳤다.
린센지林泉寺 입구.
입구로 들어서면 꽤 느낌이 있다.
중문 현판에 쓰인 글씨는 春日山.
반대편에는 第一義라고 적혀있다.
우에스기 겐신의 친필이라 한다. 겐신의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는 6글자.
계곡 안에 감싸인 사찰이 편안하다.
본당에도 마련되어있는 第一義.
본당 좌측에는 우에스기 가문 묘소가 마련되어있다.
우에스기 겐신 묘소.
카와나카지마 전투 전몰자 공양탑.
겐신의 묘소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한게 재밌었다.
아늑한 경내.
우에스기 겐신은 어린 시절 상속대상자가 아니었고 20살 넘게 차이나는 장남도 있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이곳 린센지林泉寺에서 보냈다 한다.
그런 성장배경이 우에스기 겐신을 시서화를 갖춘 당시 보기드문 다이묘로 성장케 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겐신, 토라치요虎千代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말차라도 한잔 하고 싶지만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경내를 한번 더 둘러보고 자리를 나섰다.
본당 우측 보물전에도 볼거리가 많았으니 관심이 간다면 필견.
여러 당대 유물과 더불어 겐신 친필의 현판 원본 등도 있었다.
린센지 건너편 임도를 걸어올라가 카스가야마신사로 향한다.
카스가야마성 입구에 자리한 카스가야마신사春日山神社.
겐신이 사후 군신으로 추앙받은 때문인지
쇼와 시기에 조성된 충혼탑 및 병장기들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의 제신은 당연히 우에스기 겐신.
아직 초입이지만 벌써부터 경치가 그럴듯하다.
카스가야마신사를 나서면 곧바로 보이는 겐신 동상.
실물은 꽤 큰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이제 약도에서 본대로 여기를 걸어올라가면 된다.
산노마루三の丸에서 내려다본 경치.
카스가야마성은 이렇다할 유구가 많이 보존되어 있는 성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당시 위치를 알리는 현판 위주로 돌아보았다.
사실 지형은 여전하기 때문에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겐신의 재정을 뒷받침했다 전하는 청모시青苧에 대한 안내.
청모시를 팔아 군비를 마련했다 전하는데,
해서 아래쪽에서 보고 온 기념관에도 청모시로 만든 가재도구가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니노마루二の丸 안내문.
천수각 지점에 도착했다.
표고는 180m라고 한다.
천수각 건너편에는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의 저택 자리가 있다.
천수각에서 내려다본 풍광.
천수각에서 내려가는 길.
천수각 바로 아래쯤에 고마도護摩堂가 있다.
우에스기 겐신이 출전하기 전에 이곳에서 불을 피워 재앙을 씻어냈다 전한다.
고마護摩 자체가 진언밀교의 비법으로, 그의 성장배경인 조동종 린센지를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대목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비샤몬도毘沙門堂.
겐신이 비사문천의 화신을 자칭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샤몬도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있는 재미있는 표지석.
겐신 시절부터 있었던 꽃밭花畑을 보존하고 있다는 표지석인데
죠에츠 중앙 라이온스클럽과 요네자와 중앙 라이온스클럽 이름이 새겨져있다.
우에스기 겐신의 아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요네자와로 전봉당한 역사가 있다.
그런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있는 표지석.
이 꽃밭을 주로 관리한건 나오에直江 가문이었다 한다.
나오에 가문의 집터.
천수각에서 그리 머지않은 거리로 보아 단순한 주종관계가 아닌
우에스기 가문과 오래 이어진 끈끈한 관계임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우에스기 겐신의 전대 타메카게為影로부터 이어진 관계로,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와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우정 및 주종관계는 유명하다.
한편으로는 가만 생각해보면 천수각 건너편의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집터는
나오에 가문의 집터와 표고에 큰 차이가 없다.
겐신 시절과 카게카츠 시절의 주종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법한 재미있는 대목.
겐신 사후 후계자 분쟁인 오타테의 난御館の乱에서 친구인 카게카츠를 돕고,
이후 카게카츠와 협력하여 사면초가의 위기에 휩싸인 에치고 번을 이끌어가고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나오에장으로 이에야스를 도발하거나
전후 이에야스에게 가신이 될 것을 권유받았으나 거절하거나
요네자와 번으로 전봉된 뒤에도 120만석에서 대폭 줄어든 30만석임에도 불구하고
내정에 진력하여 어떻게든 번정을 회복하려 애쓰고
일설에는 가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후계를 단절하고 사망하여
우에스기 카게카츠로부터 "주군보다 먼저 죽는 가신이 어디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
이런저런 상념을 주워섬기며 하산해서 수타소바 한 그릇.
카스가야마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었던 우에스기 겐신 동상.
우에스기 겐신은 특이한 성장배경이나 평생 독신이었던 부분 등 흥미로운 점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하극상의 전국시대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인 의義를 내세우며
별 도움될 것 없는 약소다이묘를 도와 전쟁을 하거나
조정으로부터 간토간레이関東管領직을 수여받아 상락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난세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한 다이묘로서 개인적으로 상당히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난세 속에서 언제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이 난세는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가?
이 난세는 무엇을 통해 종식될 수 있는가?
일텐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예로 봐도
아직 서주시대에서 그렇게 많이 격절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서주시대 예법의 회복을 해법으로 제시했고,
후대인 맹자는 올바른 군주상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서주시대의 회복을,
그리고 더 후대인 순자는 패자覇者를 통한 빠른 난세 종식을 바랐다.
그런 한편으로 묵자는 의義를 내세웠는데, 개인적으로는 우에스기 겐신으로부터 묵자의 그림자를 보기도 한다.
생전 우에스기 겐신은 비사문천의 화신을 자처했지만,
묵가의 행동원리, 즉 겸애兼愛사상과 더불어 국가에 소속되지 않고 약소국을 돕는 무력집단
그리고 우에스기 겐신의 행동원리에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엿보이기 때문.
난세는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끝낼 수 없고 시대정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난세 속에 자신의 정의를 관철한 우에스기 겐신의 삶에는 분명 어떤 울림이 있었다.
때문에 요네자와 번이 막부 말기까지 가신들의 협력 속에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