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 2025. 11. 23. 14:15

구두수선 학고방

지난밤 어머니 드리려고 무스탕을 구매했는데, 무심코 전에 살던 집으로 보내버리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 일요일 대낮에 휘적휘적 언덕길을 다녀왔다. 경사로 아파트 아래에는 구두수선 학고방이 있었다. (좌측 사진) 그래도 아주 판잣집은 아니라 나름대로 창문도 내고 전화도 놓고 십여년 오며가며 눈여겨보던 곳이었다. 정확히는 과거 그런 곳이 존재했었다. 오늘 가보니 학고방은 간 곳 없고 학고방 자리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측 사진)

 

피난수도 부산에는 전국 팔도의 온갖 사람이 몰려들어 포화지경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나마 배급이라도 나오고 하역일이라도 구할 수 있었던 범일동 근방은 영 나은 편이고,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 부산의 온갖 오폐수가 흘러내리는 괴정동까지 떠내려온 사람도 많았다. 괴정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이곳이 과거 지지리도 못 살던 동네라는 공통된 증언을 한다. 지금은 상전벽해라 오폐수는 모두 처리되고 복개천이 준설되었지만, 여전히 괴정에는 수많은 철학관이 자리하고 있고 뒷편 산에는 임자 없는 묘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건설법상으로도 소방법상으로도 허가된 건물이기는 힘들었을 학고방의 노인장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바로 옆 상가에는 1층과 2층 층계참 사이에서 늘상 잠을 청하던 노인장이 있었는데, 동일인인지는 모르겠으되 그리고 법으로 따지자면 불법이겠으나 부산에서는 아직도 비교적 흔한 풍경이다. 법보다 앞서는 것이 많던 시절이 있었고 당시에는 당장 닥쳐올 내일 앞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유무형의 보상을 받고 떠났을지, 혹은 수명에 의해 철거된 것인지, 노인장은 어디로 갔을지, 이제는 해봐야 소용없는 상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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