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을에서 흐르는 두 사람의 시간

※ 원작자분과의 협의 하에 게제하였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이 작품은 Pixiv의 ダニエル님의 「별이 내리지 않는 마을」시리즈입니다.

   (원작자 Pixiv 링크)

 

 

 

- 마을에서 흐르는 두 사람의 시간

타키와 미츠하가 히토하랑 이야기하거나 산책하는 이야기.

두 사람의 앞으로에 대한 것을 정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의 장래...... 이런 형태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적어보았습니다.

다음 편은 텟시사야와의 더블 데이트......일지도 (아마 분명

 

그 재해가 일어나지 않고, 어째서인지 두 사람이 동갑내기로 재회하는 이야기.

 

전편은 텟시사야의 이야기였지만, 이번 편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편을 읽지 않으시더라도, 텟시와 사야카가 사귀게 되었다는 것만 염두에 두시면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짜로 춥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중얼거리는 타키였다. 불어오는 바람은 춥다기보다 오히려 피부를 찌르는 아픔일 정도였다. 

아침이긴 하지만 아직 11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추우면 앞으로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오랜만에 온 이토모리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뭐 차가운 공기도 긴 여행으로 지친 머리를 푸는 데엔 나름 괜찮다. 무엇보다―

「타키 군―」

역 입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미츠하의 모습을 본 순간, 추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안녕, 미츠하.」

왼손을 들어보인다. 아침이라서인지, 아니면 항상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엔 미츠하밖에 없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미츠하에게 다가간다. 미츠하 역시 당연하단 듯이 달려온다.

「어이쿠.」

몇 번 그래온 것처럼 미츠하를 받아들이며 아프지 않을 만큼만 꼬옥 안았다.

품 안에 쏘옥 들어가기엔 타키의 몸이 조금 작았지만, 그렇더라도 미츠하의 몸은 왠지 가늘고 작은 것처럼 느껴진다.

외로움을 잘 타는 두 연인이라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 동안 안고 있다가,

타키는 슬며시 미츠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물러났다. 미츠하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든다.

「안녕! 타키 군.」

「정말, 아침부터 팔팔하네 넌.」

「하지만 타키 군이 만나러 와줬는걸. 아, 혹시...... 타키 군은 기차에서 지쳐버린거야?」

걱정하는 듯하면서도 뭔가 시험하는 것 같기도 한 눈빛의 미츠하.

걱정하긴 하지만 신뢰도 하고 있다. 그 정도쯤은 괜찮지? 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다.

만약 지금 내가 정말 지쳤다고 하면, 아마 미츠하는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겠지. 뭐 그것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 뭐 피곤하긴 하지만...... 널 보니 괜찮아졌어.」

타키는 결국 그리 말하며, 지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듯 가방을 들어보인다. 

거의 옷밖에 들어있지 않아 가벼운 가방이지만, 어떻든 그걸 본 미츠하가 만족스레 웃는다.

「다행이다. 그럼 가볼까?」

「응.」

오른손으로 가방을 들며 왼손으로 미츠하의 손을 잡는다. 자연스럽게 미츠하와 손을 잡게 된 것은 별거 아니긴 해도 하나의 변화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타키는 미츠하와 나란히 걸어 미야미즈네 집으로 향한다.

「요츠하는 낮 동안엔 어딘가 나간다고 했었던가?」

「응, 축구하러 간대. 아, 그러고보니 생각난건데...... 텟시랑 사야찡은 사실 시외로 데이트하러 가는 모양이야.」

「어, 정말? 우와...... 걔들도 즐거울 것 같네, 좋구만......」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걸 들은건, 미츠하가 도쿄에서 돌아가선 며칠 지나서였다. 

두 사람에게 위화감을 느끼고 물어봤더니 시원스럽게 인정했던 모양이다. 

이후 두 사람이 얼마나 꽁냥대고 있는지 전화로 들어버려선, 솔직히 엄청나게 부러웠다.

「오늘은 우리도 함께니까 말야. 하아, 그치만 타키군이 여기 있단건, 역시 아직 좀 낯선 느낌일지도 모르겠네.」

미츠하가 타키 쪽을 보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미츠하가 기쁜 듯 웃자 타키 역시 자연스레 웃음짓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런건 아닐까 하며 입을 여는 타키.

「뭐 아직 두 번밖에 못 와봤으니까. 나도 미츠하랑 도쿄를 걸어다닐 땐, 기쁘긴 했지만 뭔가 좀 낯설었어.」

「아, 타키 군도 그랬구나. 후후, 그렇구나...... 타키 군도 그렇게 생각해줬구나.」

「역시 잘 맞네, 그치?」

생각을 읽은 듯이 대답해주자 미츠하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문득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타키는 옆을 보았다.

어느새 숲을 빠져나와, 타키는 완전히 이토모리 호수를 마주보고 있었다. 

단풍은 낙엽이 되어, 경치는 일전에 타키가 본 것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호수 수면을 스치며 반짝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광경이다.

「응, 근데 역시 춥네. 타키 군은 괜찮아?」

호수를 건너온 바람에 미츠하가 눈을 찡그린다. 마주잡은 두 손은 살짝 따뜻했지만, 그럼에도 손이 시릴 정도의 차가움이다.

「확실히 좀 춥네...... 미츠하야말로 괜찮아?」

「나도 조금 추워. 하지만 모처럼이니까, 타키 군이랑 손잡고 있고 싶어......」

곤란한 얼굴의 미츠하를 보며 좋은 방법 없을까 궁리해보는 타키. 

장갑은 가져오지 않았고, 설사 가져왔더라도 미츠하의 부드러운 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역시 아쉽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어떨까 생각하더니―

「그렇지. 좀 걷기 힘들진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이 쪽으로 와주겠어?」

「응, 괜찮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오는 미츠하. 그렇잖아도 가까웠던 거리가 더 가까워져 어깨가 부딪힐 것 같다.

살짝 샴푸향기가, 아니 향수인 것 같기도 한 느낌을 받으며, 곧이어 미츠하의 향기에 휩싸인다.

순간 놓아버릴 뻔한 정신을 쥐어잡으며 타키는 미츠하와 맞잡은 손을 재킷 주머니로 가져간다.

「이러면 마주잡은 채로도 차갑지 않겠지.」

그리 말하는 타키는, 이거 왠지 조금 옛날 드라마에서 본 것 같다며 문득 떠올린다.

하지만, 살짝 유행이 지난 일인지는 몰라도 스스로 해보니 의외로 신경쓰이진 않는다.

더구나 상대가 놀라면서도 기쁜 듯이 웃어주고 있으니까, 더더욱.

「타키 군 대단해!! 후후, 확실히 이러면 따뜻해.」

주머니 속에서 꼬물꼬물 타키의 손을 잡았다 폈다 하는 미츠하의 손.

팔짱을 낀 듯한 자세를 마을 사람들이 보면 아무래도 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싶지만,

미츠하는 일전에 말했듯이 정말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도쿄랑은 달리 지나가던 사람이랑 부딪힐 염려도 없고 말야.」

「아하하, 그러네. 이토모리에서 사람이랑 부딪힐 일 자체가 일단 없을거야.」

「뭐랄까, 아까부터 한 명도 못 본거같은데......」

새삼 이토모리가 얼마나 시골인지 느낀다. 

자동차는 몇 대쯤 보여, 사람보다 자동차가 많아 보이는 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 시골스럽다.

「뭐 하지만, 이런 것도 슬슬 익숙해져야지.」

「저기 타키 군. 그거 말인데...... 진심이야?」

시선을 미츠하에게 돌리자, 미츠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타키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주말에 타키가 이토모리에 온 건 단지 미츠하를 만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뭐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구체적으로는 대부분의 이유지만, 어떻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단은 진지하게 고민해볼 생각이야. 뭐, 오늘은 그냥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정도니까,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지은 건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얘기해도 난 신경쓰이는걸. 타키 군의 장래에 대한 거잖아. 뭐 난 싫지 않지만......」

「음―, 뭐 그런가. 하지만 나 역시 신중하게 고민해서 결정할거고, 그럴려면 각각의 진로에 대해서도 잘 알아둬야겠지.

  그러니까 미츠하도 내게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해.」

「그, 그런거면, 알겠어. 하지만 그 얘긴 일단 집에 가서 해도 되지?」

그리 말하더니 웃음띤 미츠하는 타키의 손을 확인하듯이 꼬옥 쥐어온다.

조금 부풀어오르는 주머니를 보며, 아까 그렇게 응석부리더니 아직 모자란건가― 타키 역시 흐뭇하다.

「그래, 모처럼 왔으니까. 그래도 참......아―, 편의점에라도 들릴까?」

「펴, 편의점...... 하아, 역시 데이트는 도쿄에서 하는게 좋아.」

「역시 가게가 조금만 더 있음 좋긴 하겠네. 하지만 뭐...... 그런거야.」

아주 잠깐 하던 말을 멈춘다. 뭘까, 고개를 갸웃하는 미츠하의 손을 수줍게 쥐며 타키는 어떻게든 입을 연다.

「난 미츠하랑 함께라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거야.」

타키로선 혼신의 힘을 다한, 아니 뭐랄까 부끄러워서 이 이상은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그러나 틀림없이 진심을 담은 말이다.

그런 타키의 말에 미츠하는―

「타키 군...... 응, 나도. 나도 타키 군이랑 함께 있는게 제일 좋아.」

그리 말하며 웃음짓곤 더욱 다가온다. 

걷기 힘들 정도로 딱 붙어선, 미츠하는 조금 자란 머리를 마치 어리광부리는 강아지마냥 팔에 기대온다.

타키는, 이걸 위해서라면 왕복 비용 따윈 저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기가 신악전(神楽殿)이야. 기본적으로 신악을 봉납하는...... 어 그러니까, 요컨대 춤추는 장소야.」

미야미즈 신사 경내에서 타키는 미츠하로부터 건물의 이름이나 용도, 의식의 내용 등을 배우고 있었다.

건물과 경내를 포함하여 이제 한 바퀴 돌았다. 넓기도 하지만, 경사진 탓에 이곳에 익숙치 않은 타키는 몹시 다리가 아프다.

「춤이라...... 그러고보니 미츠하의 춤은 아직 본 적이 없네......」

「차암, 그런 눈으로 봐도 안 보여줄거니까 말야.」

「역시 그런가...... 아냐 농담이야. 하지만 새삼 물어보니 역시 이것저것 있구나.」

타키의 상상 이상으로 신사의 일은 많았다. 다른 신사에 대해선 모르기 때문에 비교하긴 힘들지만, 

만약 이게 평균이라면 신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꽤 힘들거라 생각한다.

「뭐 지금까지 설명한걸 전부 혼자서 하는건 아니니까, 보통은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신악무를 출 때엔 궁사(宮司)는 기본적인 준비가 메인이고.」

「하지만 의식(儀式)도 있는......건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건 익숙칠 않은데.」

「아―, 뭐 그런건 뭐라고 해야할까, 익숙해질거야...... 응, 정신이 들고 보면 익숙해져있을거야.」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미츠하를 보니, 어쩐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을 떠올려버리게 만든 것만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신사의 아이로서 신사(神事)에 참여했으니, 뭐 이런저런 추억도 많겠지.

「......힘들었겠네, 미츠하도. 일단은 돌아갈까.」

「응, 고마워. 할머니 기다리시면 죄송하니까.」

침체되었다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감상적인 분위기의 미츠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언젠가 함께 내려왔던 돌계단을 지나, 현관을 통과하여 히토하가 기다리는 거실로 향한다.

히토하는 일전과 그다지 변함없는 자세로 앉아있다.

「둘 다 어서오렴. 차라도 마시거라.」

「고마워, 할머니.」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코트를 벗은 타키는 미츠하와 나란히 앉아, 이제 막 탄 듯 김이 서린 찻잔을 든다.

바깥바람에 차가워진 몸을 차로 녹이며 한숨을 돌리자, 찻잔을 내려놓은 히토하가 입을 연다.

「그래서, 어땠느냐. 설명은 해줬느냐?」

「응. 제대로 한 바퀴 돌고 왔어.」

「솔직히...... 예상 이상으로 이것저것 많아서 놀랐습니다. 이렇게 큰 일이라곤 생각치 못했습니다만.」

타키는 솔직히, 생각한 그대로 대답한다. 타키의 다섯 배 가까운 세월을 살며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들었을지.

마음 속까지 꿰뚫어볼 듯한 눈빛의 히토하는, 타키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확실히 큰 일이야. 기억해야 할 건 산더미처럼 많고. 

  궁사(宮司)란 것은, 이 미야미즈 신사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을 

  단절시키지 않고 후세에 전해나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자.

  일단 물어보고 싶네만. 타키 자넨 어떻게 하고 싶나?」

「잠깐만 할머니.」

느닷없이 물어보는 히토하에게 놀라 일어나는 미츠하.

하지만 타키는 그걸 제지하듯 미츠하의 손을 살짝 잡아당기며 고개를 흔든다.

「타키 군......」

「괜찮아. 언젠간 결정해야 될 문제고, 제대로 대답하고 싶으니까.」

「타키 군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미츠하는 마지못해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다시 제자리에 앉는다.

물론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불안할 만도 하다. 타키 역시 놀랐다.

하지만 미츠하와 마주잡은 손의 따뜻함을 느끼며, 덕분에 어느정도 각오할 수 있다.

타키는 히토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고,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애초에 허락해주실지 어떨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타키는 한 호흡 쉬며 히토하를 본다.

기대와 불안이 섞인 미츠하의 눈동자를 보며, 각오를 굳혔다. 그러니까 이젠 주저하지 않아. 

타키는 히토하를 확실히 응시하며, 두 사람을 향해 말한다.

「하지만 전, 미츠하와 함께 이 신사를 지키고 싶습니다. 미츠하가 태어나고 자라난 이 마을을 둘이서 지키고 싶습니다.」

「그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겠지?」

「네, 물론입니다. 이 마을에서 살아나갈 각오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츠하와 함께 있고 싶으니까요.」

고작 17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타키지만, 이것만큼은 그로서도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다른 모든걸 잃더라도, 미츠하만 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히토하는 이번엔 꽤 놀라는 눈치다. 타키는 미츠하와 맞잡은 손을 꼬옥 쥔다.

「어, 저기...... 진심으로 이야기하는거야?」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미츠하의 시선.

기쁨보다도 오히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그 눈빛은 마치 언젠가 고백했을 때같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타키는 미츠하를 안심시켜주고 싶어서,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진심이야. 제대로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야.」

「하지만, 하지만 그건...... 나도 그렇게 되면 기쁠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 아니, 굉장히 기뻤어.

  하지만 그것 때문에 타키 군이 꿈을 포기하는건......」

미츠하다운 이유네. 상냥하지만 조금은 쓸쓸한. 타키는 생각한다. 사실은 자신과도 조금 닮아있다.

조금 더 신뢰해줘도 될텐데. 하지만 분명 아마 피차일반이겠지.

「미츠하, 고마워. 하지만 이건 포기...... 하는거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

「어떻게 다른거야?」

「뭐라고 해야할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나 스스로가 솔직히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어.

  미츠하를 위해서라면,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작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말을 이어나가며, 타키는 언젠가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마지막으로 몸이 바뀌었던 그 날, 신사(御神体)에 봉납하기 위한 산길에서 들었던 이야기.

그 말은 분명 눈 앞에 있는 히토하가 했던 말이다.

「뭐랄까, 인생은 다양한 선택을 쌓아나가는 일의 연속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실패한 선택도 있었고,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하고 싶은 선택도 있어. 

  하지만 여태껏 그런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있고, 미츠하가 있다고 생각해.」

「으, 응. 그건 그렇지만......」

「거기에 뭐랄까 인생은 매듭같은 거라는 생각도 들어.

  각각의 실을 고를때는, 이 실로 매듭을 짜면 어떤 모양이 될지 잘 상상이 안 되잖아.

  뭐 어렴풋하겐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잖아.

  그러니까, 이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술술 나오는 이야기에 스스로도 조금 놀란다. 하지만 말로 하니 새삼 더더욱 이해가 된다.

선택으로부터 기인하는 결과는, 그 둘이 이어지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난 내가 바라는 미래로 이어지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¹⁾

「뭐랄까...... 나답지 않네. 하지만 정말 난 진심이야. 건축을 좋아하는건 확실하지만,

  그래도 신사의 건물을 개축할 때엔 관계가 있지 않겠어?」

다시금 단언하며, 타키는 미츠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미츠하는 순간 굳어버리더니―

「타키 군!! 나, 나......」

히토하가 앞에 있는데도 마음껏 울며 뛰어든다.

「어이쿠. 정말, 이런 일로 울지 마.」

몇 번즈음 뛰어드는 미츠하를 안아준걸까, 왠지 모르게 익숙해진 타키가 미츠하를 안는다.

살짝 곁눈질로 히토하를 보니,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차를 홀짝이고 있다.

때문에 타키 역시 부담없이 미츠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미안해, 하지만 타키 군이 갑자기 너무 멋있는 말을 해서......」

「어, 멋있었어?」

타키의 질문에 미츠하가 살며시 머리를 끄덕인다. 아직은 눈물이 남아있지만 일단 울음은 그친 것 같다.

그걸 보며 안심하면서, 지금은 일단 일어나자는 의미를 담으며 타키는 미츠하의 머리를 살며시 두드린다.

「고마워. 미안해, 놀라게 해서.」

「정말. 할머님 앞이잖아.」

「별로 난 신경 안쓰고 있다네.」

옆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미츠하는 당황해선 원래 위치로 돌아가 앉았다.

반응을 보니 할머니가 있다는 것조차 잊은 모습이라, 타키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는다.

「뭐 하지만, 자네 각오는 알았네. 미츠하도 그걸로 괜찮은게냐?」

「어, 뭐가?」

울던 눈을 비비더니 미츠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한숨쉬는 히토하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말한다.

「타키가 이렇게 말한다는건 앞으로도 이 마을에 있겠다는 것 아니냐.

  즉, 도쿄에서 취직한다거나 하는건 허락할 수 없다는게지.」

사실 타키로서 은근히 걱정하면서도 또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미츠하는 도쿄를 동경하고 있고, 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타키가 이토모리로 온다면, 미츠하의 장래의 꿈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실은 그걸 생각했었어. 미츠하가 도쿄에 살고 싶어하는건 알고 있고......

  그리고 아까의 답례같긴 하지만, 나 때문에 미츠하가 꿈을 포기하는건 싫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타키 군이랑 함께 있을 수 있다면...... 타키 군과 함께 있지 못하는건 싫어.

  더구나 최근엔 타키 군 덕분에 이토모리도 좋아하게 됐다구?」

미츠하가 그리 말하며 기쁜 듯 미소짓는다. 그런 미츠하를 보며 타키도 미소짓는다.

정면을 보니 히토하가 감개무량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연다.

「그렇구만 그렇구만...... 

  혹시 미츠하가 정말로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이걸로 안심이구만.」

「어, 그랬었어!?」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크게 놀라는 미츠하에게, 그렇단다, 라며 웃는 히토하.

지금까지의 엄격한 표정은 사라지고, 타키도 잘 아는 상냥한 표정의 히토하가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요츠하도 내게 자기가 대를 이을테니 언니는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달라고 말했었단다.

  하지만 나도 늙었으니, 너희가 대를 이어준다고 하면 안심이다.」

「저기, 그럼......」

애초에 타키의 이야기에는 히토하가 허락해줄까 하는, 그런 전제가 있었다.

타키가 미야미즈 신사의 궁사(宮司)가 되는 것은 물론, 그 이전에 미츠하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타키의 그 의미는 히토하에게도 잘 전달된 듯하다.

「자네라면 안심하고 미츠하를 맡길 수 있겠구먼. 

  더구나 미츠하도 대체 누굴 닮은건지, 이렇게 보니 꽤 외고집이구먼. 뭐 이렇게되면 어쩔 수 없지.」

――기가 막힌 얼굴로, 하지만 어딘가 기쁨이 스며든 얼굴로 히토하는 말했다.

「저기...... 그렇단 건......?」

「타키가 데릴사위로 들어오는거지. 뭐 조금 나중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데, 데릴사위......」

「타키 군이...... 사위......」

갑자기 튀어나온 사위라는 단어에 미츠하와 함께 동요해버리고 마는 타키.

미츠하는 뺨에 손을 대며 얼굴을 붉히고, 타키는 그런 미츠하를 꼭 껴안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대학은 말일세, 도쿄로 가도 되네. 신직(神職)을 생각한다면 어떻든 도쿄나 미에²⁾로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일세.」

「어, 정말!? 괜찮은거야!?」

「제대로 미야미즈 신사의 대를 잇는다는 조건이지만 말이야. 그래준다면 괜찮지.」

와아...... 눈을 반짝거리는 미츠하. 

한편 타키로서는 너무도 거침없이 좋은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이야기에 놀라서 마음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저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미츠하가 도쿄에 가는 것도 있지만, 저를 그...... 데릴사위로 삼으시는 것 말입니다.」

「나는 괜찮다네. 이래뵈도 사람 보는 눈은 있거든. 아니면, 자넨 기쁘지 않은겐가?」

「그렇지 않습니다!! 허락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농담을 던지는 히토하에게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최소한 인사라도 잘 하자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굴을 드니, 히토하는 즐거운 듯 웃고 있다.

「신경쓰지 말게. 세세한건 대충이지만, 난 그럴 셈으로 오늘 여기 왔다네. 미츠하도 이걸로 괜찮겠지?」

「응. 고마워 할머니!!」

미츠하도 다시 고개를 숙인다. 만족한 듯한 히토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난 이것저것 생각할게 있어서 사무소에 가 있겠네. 타키도, 좀 이르지만 뭐 결국 자네 집이 될테니 편하게 있게나.」

그런 말을 남기며 방에서 나가는 히토하. 뭐랄까, 미묘하게 묵직한 농담 때문에 옆에 있는 미츠하를 의식하게 되어버렸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걸 보니 미츠하도 똑같은 모양이다. 

「저기......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선물 갖고 왔어. 뭔가 결과적으로 딱 좋은거 같아, 응, 지금 줄게.」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일부러 큰 소리를 내본다. 약간 억지스럽단 느낌도 들지만, 어색한 건 미츠하도 마찬가지라―

「그, 그랬었지 참!! 뭘까, 기대된다.」

타키와 비슷한 대답을 하는 미츠하. 타키는 옆에 놓여있던 짐에서 선물을 찾으며 미츠하에게 말을 건다.

「이런 말하긴 무엇하지만...... 우리들 말야, 왠지 잊고 있긴 했지만 사실은 시간이 어긋나 있었잖아. 기억해?」

「그러고 보니 그랬지. 타키 군은 사실은 연하였으려나.」

재회했던 그 날을 떠올리듯,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미츠하.

그 시간의 어긋남 때문에 미츠하가 상처입고 말았었지. 조금 분하다.

「응. 하지만 난 미츠하와 지금 함께 있어. 원인은 모르지만, 그 점을 잊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래도 역시, 제대로 된 시계는 비싸더라. 그래서 이걸.」

가방 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낸다. 포장된 그것을 건네주자, 미츠하는 눈을 반짝이더니 기쁜 듯 선물을 가슴에 안았다.

「열어봐도 돼?」

「아, 응. 그래도 너무 기대하지 마.」

기뻐하는 미츠하를 보니,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이었으면 좋았을까, 조금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토모리까지 오는 여비도 있어, 아무래도 너무 비싼걸 사면 오히려 미츠하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타키 옆에서 미츠하가 포장을 정성스럽게 뜯는다. 상자를 연 미츠하는―

「이쁘다...... 이거, 정말 나에게 주는거야?」

파랗게 반짝이는 모래시계를 꺼내며 중얼거린다.

디자인은 일반적인 것으로, 나무 테두리 안에 대칭 디자인의 유리가 들어가있다.

굳이 특징이 있다면 모래가 코발트 블루색으로 빛을 쬐면 반짝인다는 정도.

하지만 그걸 미츠하는 마치 보석을 다루듯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볕 밑에 놓아둔다.

「응. 사실은 나도 똑같은걸 사서 집에 놓아뒀어. 덕분에 그다지 괜찮은 건 살 수가 없었지만......」

「아냐, 기뻐. 더구나 커플시계잖아 그럼.」

「그런가, 다행이다. 

  뭐랄까 이거, 형태가 좌우대칭이잖아. 이 모래가 떨어지는 시간이 똑같다면, 왠지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단걸, 전화 너머로도 말이야......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싶어서. 약간 부끄럽지만.」

이야기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솔직히 말해 몸에 걸칠 수 있는 커플로서의 무언가를 살까도 했지만,

그런거라면 좀 더 제대로 된걸 사고 싶었다. 하지만 미츠하는 기쁜 듯이 시계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 로맨틱하고 멋지다고 생각해...... 이거, 타키 군이 직접 고른거야?」

「응, 고른건, 나야. 응.」

거짓말은 아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오쿠데라 선배에게 조언을 받고 선택하긴 했다.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고르고 싶었지만, 그보다도 미츠하가 기뻐해 줬으면 했다.

그런 타키의 마음을 간파한건지, 미츠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아, 거짓말― 분명히 누군가에게 도움받은거지?」

「윽, 들킨 건가.」

「타키 군은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니까 알기 쉬워. 음― 하지만 츠카사 군이란 느낌은 아닌걸...... 오쿠데라 선배?」

어떻게 거기까지 알 수 있는거지, 솔직히 놀란다.

확실히 츠카사가 이쪽으론 취미가 없는데다, 녀석에게 뭔가 조언을 구한들 달콤한 이야기만 들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쿠데라 선배라고 즉시 간파하다니, 이게 여자의 직감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해를 사면 곤란하단 생각에 타키는 황급히 입을 연다.

「아―, 뭐...... 정답이야. 아, 하지만 마지막엔 내가 직접 고른거야!!」

「아하하, 그렇구나. 응, 굉장히 기뻐. 고마워 타키 군. 소중히 여길게.」

그렇게 말하며 미츠하는 모래시계를 책상 위에 둔다.

반짝이며 떨어지는 모래를 둘이서 보고 있는데, 미츠하가 머리를 살며시 타키의 어깨에 기대온다.

거기에 응하듯이 타키는 미츠하의 손을 살며시 맞잡는다.

「이쁘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야.」

「타키 군이 준 거니까.」

서로의 목소리가, 공기뿐만 아니라 서로의 몸을 통해 흐른다. 멍하니 둘이서 모래시계를 보며, 마지막 모래가 흘러내린다.

그것을 본 미츠하가 아...... 쓸쓸한 듯 중얼거린다. 아쉬운 듯한 미츠하가 살짝 떨어지려 하는데―

「조금만 더, 말야.」

타키가 그걸 막듯 손을 뻗어 모래시계를 반대로 놓는다.

「타키 군......」

「뭐, 조금만 더라면 괜찮겠지.」

아직 해가 중천이고, 기왕에 이토모리에 왔으니 가보고 싶은 곳도 많다.

그래서, 조금만 더.³⁾

타키가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으니, 미츠하 역시 기쁜 듯 머리를 다시 기대온다.

소리없이 모래시계는 흐른다. 방 안에는 둘의 숨소리 뿐. 조용한 시간 속 모래가 모두 흘러내리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파란 모래가루가 아래쪽으로 모두 모여있다. 이제 슬슬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타키.

하지만 이번에는 옆에서 손을 뻗어 모래시계를 반대로 놓는다.

「너도냐.」

「후후, 응. 조금만 더³⁾...... 응?」

미츠하의 속삭임에 타키 역시 한숨쉬면서도 받아들인다. 애초에 처음 거꾸로 놓은건 나니까, 한 번은 어쩔 수 없지.

그런 변명을 하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을 둘이서 함께 볼 수 있다는 행운에 감사하는 타키였다.

 

 

 

[각주]

¹⁾ 選択した事による結果は、二つが結びついてみなければ分からない。だから結局、自分が欲しい未来に結びつく選択をするしかないのだと。

  무스비, 미래로 이어지는 선택

²⁾ 三重県미에 현. 나고야의 서남쪽, 하마마쓰의 서쪽, 오사카의 동쪽에 있는 혼슈의 현이다. 이세 신궁이 있으며 나라에서 가깝다.

³⁾ もう少しだけ (なんでもないや의 가사)

 

 

 

[지난 편에서 원작자께 번역, 전달된 감상댓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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