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빌더

※ 원작자분과의 협의 하에 게제하였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이 작품은 Pixiv의 TMC님의「날씨의 아이」단편입니다.

(원작자 Pixiv 링크)

 

 

 

- 레인보우 빌더

C96 (나츠코미) 에서 무료배포했던 이야기를 투고합니다.

본편 이후 시점의 호다카와 히나, 그리고 나기의 소소한 한때입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날씨의 아이 전시회에 얼른 다녀왔습니다만, 날씨의 아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보물이 널려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콘티에만 적혀있는 그런 내용들도 있으니 상세히 읽어보시면 이래저래 참고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국적으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의향이 있으신 분은 부디 한번 가보세요!

4DX도 보고 왔습니다만 꽤나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ω^)

 

 

 

 

 

 

 

 

──이 거리에 마지막으로 무지개가 걸렸던 건 대체 언제쯤이었을까.

 

이제 막 여름에 접어든 무더운 오후. 난 협소한 아파트 창가에서 언제나처럼 줄곧 비내리는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좁디좁은 마당에 어느새 누군가가 놓아둔 화분조차, 그치지 않는 이 비에 흠뻑 젖어 이끼마저 슬어있다.

오랜 시간, 푸른 하늘은 커녕 무지개조차 보이지 않는 그런 하늘을 문득 올려다본다.

어딜 나갈까 싶어도 내키지 않는 휴일. 그렇게 권태로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내 귓가에 문득,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와 만날 약속도 누군가가 찾아올 예정도 없다. 누굴까 싶어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거기엔 무언가 큼지막한 짐을 기쁜 듯 내보이는 나기 선배와 히나 씨가 있었다.

 

「야 호다카, 3인분 필요하니까 얼음 제대로 갈아내라구.」

「선배는 여전히 과격하시네요……」

난 재촉받으며 반쯤은 자포자기한 기분으로, 귀여운 고양이 발모양을 본뜬 빙수기계 손잡이를 억척스레 돌리고 있었다.

셋이 들어앉은 것만으로도 꽉 차버린 비좁은 내 방엔 지금, 작달막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히나 씨와 나기 선배, 그리고 까만 고양이 얼굴을 한 빙수기계가 있다.

존재감을 어필하며 진중히 앉아 있는 그 고양이는 왠지 아메와 닮은 듯한 풍채다.

방금 현관문 앞에서 선배가 의기양양하게 건네던 큼지막한 짐에 들어있었던 빙수기계다.

연락없이 갑자기 찾아온 두 사람과 함께, 난 냉장고에서 얼음을 있는 대로 긁어내어 이렇게 다같이 빙수를 만들고 있다. ──주로 내가 만들고 있지만.

 

「달달하다. 여름엔 역시 빙수지, 그리고 어차피 호다카는 휴일엔 혼자일테니 쓸쓸했지?」

빙긋 웃으며 히나 씨까지 그런 말을 꺼냈다.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이렇게 굳이 빗속을 뚫고 놀러와줬잖아, 좀 더 감사하라구.」

선배가 짐짓 생색내듯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그리고 말야. 우리가 선택한 일이긴 하지만, 계속 비오니까, 뭐 즐거운 것도 좀 하고싶어지는 법이잖아.」

창밖으로 먹구름을 올려다보며 선배가 말했다.

「즐거운 거?」

「……저기. 호다카는, 무지개 본 적 있어?」

내 말에 문득 히나 씨가 그런 이야길 꺼냈다.

「응. 예전에 본 적 있어. 하지만 지금은──」

얼음을 갈아내며 난, 햇빛이 들지 않는 두터운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히나 씨와 나기 선배가 둘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무지개가 안 걸리면,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호다카. 같이 무지개 만들어보자구!」

그리곤 두 사람은 커다란 짐에서 뭔가를 하나 더 뒤적거리더니, 형형색색의 갖가지 병들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선배와 때때로 교대하면서, 다 갈아낸 세 그릇 새하얀 얼음 위에, 두 사람이 사갖고 온 컬러풀한 시럽을 마치 무지개를 그려넣듯 나누어 끼얹는다.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 대신 우리 손으로 직접 무지개를 만들듯, 이건 좀 과장된 표현같지만, 마치 무색투명한 세계가 일곱빛깔로 물들어가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히나 씨가 맑음소녀 일을 하고 있던 그 시절, 그때도 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가 그치지 않는 나날 속에 맑은 하늘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우린 이곳저곳에 눈부신 햇살을 비추었다.

하늘을 맑게 하는 그녀의 힘은 마치, 거리를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만 같았다. 하늘뿐만 아니라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맑아지는, 그런 그녀의 힘이 많은 사람들을 미소짓게 해주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 미소짓던 사람들의 한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날씨는 사람의 마음마저 움직인다. 그렇게 날씨를 움직이던 히나 씨에게, 그때 내 마음은 어쩔 수조차 없을 만큼 움직이고 있었다.

 

「──호다카?」

어느새 히나 씨가 내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에 내 마음이 비치는 것만 같아, 나는 허둥대며 그 눈을 마주했다.

「어, 그, 왜? 히나 씨.」

「호다카 빙수 안 먹을거면 내가 한 숟갈 먹을래!」

「아, 그럼 나도!」

선배까지 함께 숟가락을 내밀고 있었다.

「자, 잠깐. 어차피 다 같은 맛이잖아……」

쓴웃음지으며 일곱빛깔 색을 띤 그 빙수를 한 입 떠먹었다.

「일곱가지 맛이라니 생각보다 더 맛있잖아!」

「그치! 무지개가 이렇게 맛있을줄은 몰랐어!」

……하지만 왠지,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아까까지의 권태로운 마음이 거짓말처럼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해는 뜨지 않아도 무지개라면 만들 수 있어. 두 사람과 함께 있자니 마치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

무지개가 걸리지 않는, 비가 그치지 않는 이 도쿄일지라도.

 

「아, 저기 봐봐. 잠깐 비 그친 것 같아.」

「어, 정말?」

히나 씨의 말에 창밖을 올려다보자, 아까까지 내리던 비가 그쳐있었다.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 다시 내리기 시작하겠지만, 두터운 구름 사이로 살며시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문득 구름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 좁디좁은 아파트 마당을 비추었다.

「앗!!」

줄곧 내리던 비가 개고, 아주 조금 엿보일 뿐인 푸른 하늘. 그 빛속에 한순간, 마당에 걸린 무지개가 내 눈에 들어왔다.

「호다카, 왜 그래?」

「저기, 저기 무지개 있어!!」

「어 진짜!?」

두 사람이 재빨리 마당을 내려다보았지만, 정말 아주 잠깐이었던 건지 무지개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호다카가 잘못 본거 아냐?」

「아냐, 진짜로 걸려 있었다니까! 저기, 히나 씨는 믿어줄거지!?」

「음― 글쎄?」

「그럴 수가……」

문득 웃어보이는 두 사람의 미소에 이끌려 나도 웃어보였다.

이젠 사람들을 미소짓게 해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잠시 비가 그칠 때도 있는 것처럼, 잠시 구름 틈새로 하늘이 보이듯, 내 마음 속엔 언제까지나 무지개가 걸려있을 거야.

비좁고 괴로운 이런 방에 있어도, 우리들의 미소 한가운데엔 지금도 여전히 히나 씨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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