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서생포왜성 입구에는 이렇게 넓은 주차장 겸 사당이 마련되어있다.

왜성으로 향하는 길은 인적이 드물다.
관광지로서 찾아가기에는 애매한 위치와 더불어
왜놈들이 쌓아놓은 성을 뭐하러 보러가는가? 라는 의문...
하지만 어떻든 역사의 흔적은 역사의 흔적이다.
어쩌다보니 한반도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있는 왜성인 서생포왜성은 한번쯤 봐둘만한 값어치가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니 그럭저럭 보존의 손길이 보인다.

성 내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산길이다.

이시가키石垣가 상당히 잘 보존되어있다.
물론 보존하려고 해서 했다기보다, 인적이 드물고 산 위에 지어놓았다보니 이렇게 된것이겠지만...
1895년까지는 조선 수군의 동첨절제사영으로 사용되었고,
근현대에도 여러 역사적 변곡점을 비껴나가 이렇게 보존되어있다.

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근처 포구.
임진왜란 때 어째서 가토 기요마사가 이곳에 이런 성을 쌓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위치선정이다.

성 최심부.

이곳에 천수각이 있었던 모양인데 현존하지 않는다.

이시가키의 보존상태가 상당하다.
일본식 성이라고 해도 당연히 시기별로 그 양식이 다른데,
임진왜란 시기에 한반도에 지어진 왜성들은 그 특성상 빠르게 공사가 마무리되어야 했고
더불어 한반도에서 조달하기 쉬운 화강암을 평소보다 많이 사용하고,
따라서 노보리이시카기登り石垣 등 중세시대 양식과 더불어 쇼쿠호 양식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
전쟁 후 다이묘들은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 한반도에서의 축성 경험을 살렸고,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다이묘는 대체로 서일본의 다이묘들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일본과 동일본의 축성 양식 경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 남부지방 위주로 여러 왜성이 남아있지만,
부정적인 국민여론도 있고 해서 사실 제대로 주목받고 보존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시키는 나라에서 왜성의 존재란 수치의 증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고...
하지만 일본에서도 백강 전투 직후 주로 백제계 도래인들의 기술을 이용해서
소위 조선식 산성 (야시마 성, 오노 성 등) 이라 하여 여러 축성이 이루어졌는데,
그것들이 바로 일본 최초의 성이었기도 하니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명백하다.
기왕에 남아있는 유적들을 못 보고 지나친다면 그것도 아까운 일이다.
어쩌다가 이곳에 왜성이 건축되었고 그 이후 일본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흐름을 생각하며 성을 거닐어보는 건 상당히 사치스러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토가 영지로 돌아가 축성했던 것이 구마모토 성이고 세이난 전쟁 때 그 성을 돌파하지 못한채 사쓰마 군이 돈좌되었으니...
때문에 그나마 한반도의 왜성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인건 필연일지도 모르겠지만,
세이난 전쟁은 한국의 근현대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인접 국가들의 근황을 두루 살펴보면 좀 더 입체적으로 즐겁게 과거와 현재를 조망해볼 수 있다.
왜성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서생포왜성은 한번쯤 대표격으로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