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 2024. 6. 17. 17:15

담배

작년 3월, 교토를 여행하다 신형 전자담배 기기인 글로 하이퍼를 구매했다. 카와라마치의 한 비즈니스 호텔에서 피우는 전자담배에서는 교토 뒷골목의 냄새가 났다. 한모금 거듭 마시며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닌 교토의 기억을 갈무리하며,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글로 하이퍼를 피우고 있자면 곧바로 교토의 공기가 떠올랐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사카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며 세토내해에서 일몰에서 일출까지 현해탄을 표류하며 나는 내내 교토의 공기에 휩싸여있었다.

 

담배는 몸에도 안 좋지만 악취도 문제다. 담배 피우는 사람도 담배냄새는 싫어한다. 군대에서 담배냄새는 큰 골칫거리였다. 언제나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앞섶에 넣어다니니 군복에서 담배 쩐내가 떠날 날이 없었다. 함께 파견중이었던 동기가 그나마 냄새가 덜하다며 더원 에티팩을 피우고는 했다. 당시까지 보헴 시가 6미리를 피우고 있었던 나는 그날부로 더원을 집어피웠다. 과연 에티팩은 냄새가 덜 났지만, 흡사 마분지를 태우는 듯한 무미건조함에 더원 체인지를 골라피우게 되었다. 해서 더원 체인지를 피우고 있으면 군대 시절 파견에 불려다니며 밑도 끝도 없는 야근을 반복하던 나날이 떠오른다. 영상 인코딩 걸어놓고 벤치로 나와 콜라 한병과 함께 담배를 먹어삼키던 시간. 전역을 하고 졸업을 하고 방송을 하거나 외주를 할때에 더원 체인지를 피우고 있자면 그 시절이 떠올라 어째서인지 무던히 집중할 수 있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을 함께했던 담배는 도라지 연이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정신이 없었다. 학과 활동, 운동 동아리 활동, 고등학생 때는 좀처럼 하기 힘들었던 여러 정모 참가... 정신없는 나날 속 우선순위를 저울질하며 하루를 흘려보내고 신촌 신수동 한밤중 어슴푸레한 가로등 아래 내 손에 들려있는건 언제나 도라지 연이었다. 그랬던 담배가 대2때 판매부진으로 절판이 되고, 그로부터 입대까지는 1년 정도가 남아있었다. 어째서인지 대학 초년생 시절이 저물어가는 느낌이 닥쳤다. 동기들은 대체로 입대를 하고, 학과와 동아리는 정리가 되었고, 어느새인가 나는 전공공부를 혼자 하고 있었다. 여러 정모도 어느새 분류가 끝나 초년생 시절의 열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침잠하는 기분으로 던힐 미드나이트를 피웠다. 도라지 연은 절판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피워보며 그때를 떠올리는건 이젠 불가능해졌다.

 

팔리아멘트에선 국회도서관의 기억이, 이름모를 굵직한 시가에선 촛불집회의 기억이, 레종에선 인사동의 기억이, 한라산과 장미에선 조치원의 기억이, 마일드세븐에선 어수선한 안산 뒷골목의 기억이, 보헴시가에선 팍팍했던 군대 초기의 기억이, 액상형 전자담배에선 팬들과 함께 영어로 떠들던 기억이 피어오른다. 사실은 원래 담배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더 잘 떠오를 이유도 없다. 우스운 일이다.

 

금연한지 3달 정도가 흘렀다. 담배를 끊는 편이 좋다는걸 모르는 흡연자는 없다. 몸의 변화는 말할 수 없이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중학생이 된 기분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간 감각. 담배를 끊는 편이 좋다는걸 모르는 흡연자는 없다. 여명이 길지 않았다면 아마도 담배를 끊는건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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