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자분과의 협의 하에 게재하였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 이 작품은 Pixiv의 ナル님의 「너의 이름은.」단편입니다.
- 망각, 재회, 그리고 재생
예전부터 구상해왔던 것입니다만, 간신히 형태를 갖춰 써낼 수 있었습니다.
타키 군과 미츠하의 재회, 그 뒤의 이야기.
이런 가능성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써 본 이야기입니다.
괜찮으시다면 부디 읽어주세요.
오랜 시간이 지나, 나와 미츠하는 드디어 다시 만났다.
서로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선, 단지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는 공허감만을 안은 채,
정처없이, 하지만 그 누군가를 계속 찾아왔다.
그리고 우린 재회에 이르렀다.
첫눈에 깨달았다.
이 사람이, 계속 찾아왔던 그 사람이라고.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오로지 이름만을 계속 부르며, 끌어안고 키스를 나누었다.
순서도 그 무엇도 없었다.
찾고 있던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들, 만난 지 5분도 안 됐는데 키스를 해버렸다.
재야의 헌팅고수조차 깜짝 놀랄 속도였다고 새삼스레 떠올린다.
상식적으론 역시 이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그런 행동을, 미츠하는 받아들여주었다.
그 뒤 냉정하게 그 때를 뒤돌아보며 굉장히 부끄러워하고는 있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일단 그 부분은 제쳐두자.
그 뒤론 조금씩 나아갔다.
둘 다 사회인으로서, 심지어 평일 아침.
시계를 보니 이미 출근 시간을 훌쩍 넘겨, 당장이라도 뛰어가지 않으면 안 될 시각.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헤어지면 두 번 다신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아직 내게 안겨있는 이 존재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미츠하 역시 움직이려 하지 않는 모습, 그녀 역시 나와 같은 불안을 품고 있겠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렇게 느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어디선가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 느낀 순간 자연스레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존댓말인 이유는, 일단은 아직 조금은 이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이겠지.
아무리 재회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들, 상대방 역시 그렇게 느껴준다 한들, 일단은 첫 대면인 상황이다.
끌어안고 키스까지 해놓고선 이제 와서 무슨 소리인가 싶긴 하지만…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아직도 눈물을 글썽이며 미소와 함께 대답해주는 미츠하.
그 표정에 고동소리가 커져만 가는 것 같다.
이 미소가 보고 싶었다.
언제 이걸 봤었는지, 아니 애초에 본 적이 있었긴 했는지.
그것조차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했다.
두 사람 다 직장에 연락해선 몸이 아파서 쉬겠다고 했다.
호되게 질책받고 직장 내에서의 평가도 꽤나 내려가 버린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 있다.
내려간 평가는 만회하면 그만이다.
거의 같은 타이밍에 연락을 끝낸 미츠하가 괜찮을 것 같다며 손짓한다.
아무래도 휴가를 받아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가볼까요.」
미츠하의 손을 당겨 잡고 걷기 시작한다.
다시 뺨을 물들이면서도, 뿌리치지 않고 잡아준다.
이렇게나 마음이 트이는 건 몇 년 만인 걸까.
그로부터 둘이서 하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자주 가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시간인 탓에 혼잡했던 가게에서 나와 다른 가게로 옮겨서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점원의 눈치를 받고 공원으로 장소를 옮겨서는 또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하고 있는 직장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 대학 시절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실은 나보다 연상이란 걸 알았을 땐, 왜인지 조금 동요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며 위화감이 오갔다.
「저, 실은 이토모리 출신이에요.」
「이토모리라면, 그 혜성이 떨어졌던…」
「네. 다행히 대피할 수 있었지만…」
이토모리…
난 예전에 그 곳에 찾아간 적이 있다.
어떻게든 찾아가야 한다는 사명감 비스무리한 어떤 기분에 떠밀려,
어느새 기후 현 히다까지 가서, 낯선 산꼭대기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어째서 그 곳에 갔던 건지, 거기서 무엇을 했던 건지.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지만, 하지만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 속 뻥 뚫려버린, 이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던 건.
「큰일이었겠어요…」
뻔한 인사치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조금 힘들었어요. 전부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집도 고향도.」
「…」
「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게 있었어요.」
「의지, 말인가요.」
이젠 미사여구밖에 생각나질 않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미츠하는 밝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손바닥에 적혀 있던 말이, 제게 용기를 줬었어요.」
그리 말하며 스스로의 손바닥을 바라본다.
「그 말을 생각하면 왠지 힘낼 수 있었어요. 반드시 살아남을 거라고. 꼭 다시 만날 거라고.」
내게 말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그 말들.
하지만 내겐 그 손에 어떤 말이 쓰여 있었는지 왠지 짐작가는 데가 있었다.
저물어가는 햇살 속에서, 사인펜으로 손에 썼었다.
“잊어버리지 않게끔, 이름을 써주자.”
상대방의 손에 써주고, 내게도 써달라고 하던 와중에 떨어져버린 펜.
저물어버린 석양.
잊으면 안 되는, 잊고 싶지 않은 이름.
너무도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전할 수 없었던 그 후회.
멈추지 않는 눈물.
「널 좋아해…」
「네…!?」
중얼거린 말에 놀라움이 들려온다.
「그렇게 썼었어, 좋아한다고.」
아직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편적인 것들만 떠오를 뿐.
하지만 전해야만 한다. 그때처럼 우물쭈물하고 싶지 않다.
그 때가 언제인지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내가 왜 그걸 썼었는지는 모르겠어. 실은 예전에 만났었는지 아닌지조차 모르겠어.」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표정, 그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너무 자주 울잖아.
기억의 한켠이 또 하나 떠오른다.
어깨에 닿는 머리, 빨간 끈을 맨 체 울고 있는 그 얼굴.
「하지만 전하고 싶어. 내가 미츠하에게 품고 있었던 마음을.」
어느새 반말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게 더 맞는 것 같다.
「난 미츠하를 좋아해.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낼 거야. 지켜줄게. 함께 있어 줄게.」
미츠하의 눈에 고인 눈물이 흘러내린다.
울지 마.
난 네가 웃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구해줄게.」
이 마음에 거짓은 없다.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줘.」
하염없이 우는 미츠하.
너무 울어버려선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난 미츠하와 만난 적이 있다.
이젠 꽤 많이 떠오른 기억은, 그럼에도 제대로 연결되진 않는다.
「나, 나… 도, 좋아해! 쭈욱… 함께, 있고 싶었어!!」
뛰어드는 미츠하를 안아준다.
아직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정돈 괜찮지 않을까.
품속에 소중한 존재가 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미츠하…」
「타키 군…」
두 번째 키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눈물맛이 났다.
이제와서 떨어져 있는 건 불가능하다.
자취하고 있었던 미츠하의 집에 그대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이야기를, 세 번째 키스를.
둘 다 거기서 멈출 수 있을 리 없이, 그대로 하나가 되어, 하룻밤을 밝혔다.
미츠하와 이어진 그 순간.
흩어져있던 기억들이 마치 플래시백처럼 하나가 되어 이어졌다.
미츠하와 몸이 바뀌어선 이토모리에서 생활했던 것.
머리를 묶을 줄 몰랐던 탓에 포니테일로 다녔던 것.
텟시, 사야찡과 함께 카페를 만들었던 일.
마이클 잭슨 춤을 추고는 후배에게 찬사를 들었던 일.
몸이 더 이상 바뀌지 않게 되어선, 필사적으로 미츠하를 찾아다녔던 것.
그 결과, 혜성이 이토모리 마을을 파괴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
망연자실 속에, 마지막 희망을 품고 미츠하의 쿠치카미자케를 마셨던 일.
이토모리 최후의 날, 텟시와 사야찡과 함께 모두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던 것.
그리고, 사당 근처의 칼데라에서 카타와레도키 때 미츠하와 처음으로 만나고, 헤어졌던 것.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워했던 사람과 다시 만나, 이어져, 모든 것이 떠올랐다.
언젠가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셨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그것이 무스비란다.”
한 뒤에, 둘이서 끌어안으며, 충족감 속에서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때때로 현실은 잔혹하다.
때문에, 이토모리에 혜성이 떨어지고, 그런 일들을 겪었는데도 모든 걸 잊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게 다시 현실이 닥쳐왔다.
미츠하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
우리가 재회한 지 1달이 지났다.
재회한 다음날엔 그 반동으로 무척이나 힘들었다.
신입사원 주제에 입사하자마자 저지른 사고에 주위 사람들이 엄청나게 화내서,
여기저기 고개를 숙였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신용은 좀처럼 되찾을 수 없었고 1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인 현실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걸 되찾았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직장에서 질책당하는 것쯤이야 참아낼 수 있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긴 하지만.
미츠하와의 관계는 순조롭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떨어질 때마다 불안이 뒤따라 붙어선, 끝없이 연락하고 퇴근 후 매일마다 만날 정도였다.
하지만 서로 사회인이니까, 이대로라면 문제가 생길 것임에 틀림없었다.
때문에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하루에 한 번은 꼭 연락하기로 하고 일단은 침착해지기로 했다.
마치 중학생의 첫사랑 커플 같은 약속이다.
하지만 그 약속 없인 우리 둘 다 도저히 침착해질 수가 없었다.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워했던 시간, 헤어져있었던 시간이 너무 길다.
그렇게 약속하고 평일에 무리해서 만나는 건 자제하기로 했지만, 그 반동인지 주말엔 가급적 함께 있을 때가 많다.
함께 있다기보다도 꼭 붙어 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함께.
솔직히 좀 지나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 둘 다 만족하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느낌의 한 달.
별다른 문제없이 순조로운 듯이 보였던 한 달.
겉으로는.
미츠하의 기억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 기억도 안 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본인 말로는,
「단편적인 기억은 있어. 타키 군의 몸으로 팬 케이크 잔뜩 먹었던 일이라든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오쿠데라 선배랑 같이 돌아왔던 거라든지.
이것저것 떠오르긴 하지만, 소중한 부분이 떠오르질 않아.
그게 아직 안개낀 것처럼 보이질 않아.」
그리 말하며 표정을 흐리는 미츠하를 봐버리면, 꼭 떠올려 달라며, 힘내달라며 말할 수가 없다.
미츠하가 말하는 소중한 부분은, 분명 사당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때의 기억이겠지.
그 일이 있었기에 우린 서로를 잊지 않고 찾아다닐 수 있었다.
그 때 미츠하의 손에 써주었기에 지금이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걸 떠올리면 또 하나의, 너무나도 괴로운 기억이 함께 떠올라버린다.
『혜성 재해 피해자 명단 미야미즈 미츠하』
없었던 일이 된 그 과거.
나와 미츠하가 바꾸어놓은 그 과거.
그럼에도 그 때 느꼈던 가슴 속 답답함은 또렷이 내 안에 남아있어서,
지금조차 그걸 떠올리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
모든 걸 떠올리면, 미츠하 역시 그걸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괴로운 기억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
하지만 역시 전부 떠올려줬으면 바라는 마음 역시 분명히 있다.
소중한 기억.
우리의 원점이자 출발점.
가능하다면 둘이서 공유하고, 함께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싶다.
그런 상반된 생각 속에 흔들리는 매일.
그래서겠지. 눈치채지 못했던 건.
스스로의 망설임에 휩쓸려서는, 미츠하의 표정 속 가끔 스미는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타키 군, 잠시 앉을래?」
주말마다 하는 데이트 중.
둘이서 걷던 와중에, 미츠하가 제안해온다.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일 바빴어?」
오늘은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었다.
상영시간까진 아직 조금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긋하게 있을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그런 건 아냐. 나보다 타키 군이 더 피곤하지 않아…?」
그리 말하는 미츠하,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평일엔 무척이나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피곤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미츠하와의 시간에 영향을 미칠 만큼 피곤한 건 아닌데다, 무엇보다도 피곤하다는 자각조차 없다.
미츠하가 한 말의 속뜻이 뭘까 고민하는 내게 다시금 미츠하가 말한다.
「피곤하다기보단 말야. 타키 군은 가끔 여기에 마음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우리가 떠올린 기억의 차이에 사로잡혀 있을 때다.
「그 때 타키 군은 말야, 날 보고 있는데도 안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날 통해서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미츠하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힌다.
「타키 군은 지금 날 안 보고 있잖아. 나인데 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고 있잖아.」
머리를 얻어맞은 감각에 사로잡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츠하가 말하는 건 사실이기에.
「타키 군은…」
더 이상 말하지 말아줘.
「전부」
부탁이니까 기다려줘.
「기억해낸거지?」
다가오는 그 말.
재회한 그 날로부터 가슴 속에 숨겨왔던 진실.
두 사람의 마음의 차이가 결국 커다란 엇갈림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
둘이 앉아 있었던 곳에 혼자 앉아 있다.
미츠하는,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다며, 날 남겨두고 돌아갔다.
울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정말 울리기만 할 뿐이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중얼거림이 울려퍼져 헤메인다.
“타키 군은 지금 날 안 보고 있잖아.”
그 말대로다, 기막히다 못해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다.
난 미츠하의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건가.
뭘 위해 미츠하를 찾아왔던 건가.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게 아냐.
내가 내 모든 걸 던져서라도 미츠하를 구하고 싶었던 건 이러기 위해서였던 게 아니다.
단지 미츠하가 좋았기 때문이다.
기억이 있든 없든 그런 건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게 된, 지키고 싶었던 건 미츠하라는 존재였다.
지금이든 예전이든 변함없이.
「왜 이렇게 늦게 알아차리는 거냐 난…!!」
스스로에게 질책하며 일어선다.
그리고 달린다.
전해야만 한다.
사과해야만 한다.
소중한 걸 잊고 있었다.
용서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는 웃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해야만 한다.
소중한 걸 또다시 잃는 건 이젠 사양이다.
어느새 해가 저물고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사회인이 되어선 운동할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었던 탓일까,
이제 막 뛰기 시작했는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숨쉬는 것조차 괴롭다.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마냥 무겁다.
하지만 지금 멈출 수는 없다.
미츠하와 만나기 전까진 멈출 수 없다.
그 때도 이렇게 달렸었다.
미츠하의 몸으로. 혜성의 낙하시간이 임박해오던 그 때.
사당에서 미츠하가 날 부르는 것 같은 느낌만으로, 그저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아마 내일은 움직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일보다 오늘이 100배는 더 중요하니까.
「미츠하!!」
미츠하는 그곳에 있었다.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여기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재회했던 그 계단에.
「늦잖아…」
계단 한가운데에 미츠하가 서있었다.
아까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잘된걸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할 고백은 꽤 부끄러우니까.
마주보며 말하는 건 꽤 부끄러울지도 모르니까.
「기다리고 있었어… 타키 군은 꼭 와줄거라고 믿고 있었어.
하지만 왠지 와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
자그마한 미츠하가 평소보다도 작아보였다.
당장이라도 다가가서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안 된다.
지금 내겐 그럴 자격이 없다.
먼저 내 마음을 전해야만 한다.
「나 말야, 이것저것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착각…?」
내 마음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미츠하를 다시 만나서, 잊고 있던 기억이 돌아와서, 미츠하도 그래줬으면 했었어.」
그래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 때의 미츠하를 지금의 미츠하와 겹쳐보고 있었어.
지금의 미츠하에 대해선 제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았어.」
「…읏」
미츠하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하겠지. 지금의 스스로를 부정당했으니까.
「하지만 말야, 아까 미츠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어.
내게 있어서 미츠하는 어떤 존재인지.」
한 계단 내려선다.
「분명 몸이 바뀌고 있었던 그 시절의 미츠하는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존재였어.
내 세상을 바꿔놨어. 이런저런 감정도 알려줬어.」
다시 한 계단 내려섰다. 미츠하가 있는 곳까지 열 걸음.
「그래서 그 때의 미츠하가 소중하단 사실은 변함없어.」
미츠하는 아무 말도 않는다.
그 어깨는 떨리고 있어서, 역시 울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내게 소중한 건 과거의 미츠하가 아냐. 미츠하라는 존재 그 자체야.」
과거에 사로잡혀있었던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이상하지만.
하지만 결국엔 그런 것이다.
내게 필요한 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츠하뿐이다.
「미츠하랑 다시 만나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어.
매일이 그저 즐거웠어.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됐어.」
한 계단, 다시 한 계단, 내려선다.
이젠 거리는 없다.
「기억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 미츠하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알고 있었던 건데도 깨닫는 게 늦어버렸어. 그래서 미츠하를 불안하게 하고, 울려버렸던 것 같아.」
미츠하가 서있는 계단과 같은 곳에 선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하지만 내겐 그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미안해.」
그 말에 진심어린 사과를 담는다.
그리고 정말 전하고 싶었던 한 마디를 꺼냈다.
「사랑해.」
그 말과 동시에 미츠하가 안겨왔다.
가볍다.
흐느끼는 그 등을 살며시 감싸준다.
이 가볍고 작은 몸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 품고 있었던 걸까.
거기에 난 또다시 불안을 짊어지게 하고 말았다.
「바보바보바보바보!! 타키 군은 정말 바보야!!
난, 난 타키 군이 없으면 이제 살 수 없어!!
타키 군이 날 봐주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괴롭다구!!
아무리 상대가 예전의 나라고 해도!!」
울면서 화내는 미츠하.
앞으로 100번 정도 바보 소리를 들으면 내가 했던 짓이 용서가 되려나.
그런다고 없었던 일이 될 리가 없지만.
「나도, 타키 군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만 초조해할수록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져서…!
그치만 타키 군이 쓸쓸해할 때마다 다시 초조해지는걸…!」
악순환의 반복.
결국 내 잘못이다.
「이래선 타키 군 곁에 있을 수 없다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알아!?
그치만 타키 군이랑은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목소리가 쉬어선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담아온 걸 모두 쏟아낸 것일까.
끄집어낸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는 어깨, 품속에서 흐느끼는 미츠하에게 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게 미츠하 곁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
이렇게 괴로워하고, 불안해하고, 울고 있는데.
“다시금 모여서 형태를 이루고, 한데 모여 얽히고,
때로는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그것이 무스비. 그것이 시간.”
언젠가, 먼 옛날 들었던 그 말이 되살아난다.
그랬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를 생각한다 해도, 결국은 각자 다른 인간이다.
생각하는 방향이, 느끼는 방법이 다르다.
그런 두 사람이 인연을 맺으면, 당연히 충돌도 생긴다.
끊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마다 다시 이으면 된다.
모여 얽히고, 헤맬 땐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둘이서 인연을 맺어가면 되는 거다.
「미츠하.」
그 이름을 부른다.
「내게 반쪽¹⁾은 미츠하뿐이야.
앞으로도 울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슬프게 할지도 모르고,
불안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행복하게 해줄 테니까.」
곁에서 네가 웃어주는 미래가 내 바램이야.
「그러니까 나랑 앞으로도 함께 있어줘.」
미츠하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대체 이런 간단한 걸 왜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그 때, 품속에서 울기만 하던 미츠하가 갑자기 움직였다.
지금까지의 그 무엇보다도 뜨겁고 달콤한 입맞춤을 보내왔다.
그건 몇 초였을까, 혹은 몇 분이었을까.
그것조차 알 수 없을 만큼 감미롭고 열정적인, 더 이상 없을 정도의.
미츠하가 얼굴을 떼었다.
그리고 말했다.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저주할거야.」
그런 말을 하면 무조건 행복하게 해줄 수밖에 없잖아.
애초에 다른 생각은 들지도 않아.
「미츠하, 사랑해.」
「나도 사랑해.」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아.
미츠하가 다시 다가오고, 나 역시 결의를 품고 눈을 감았다.
…………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날아가듯 바뀌어간다.
도심 속 빌딩의 바다에서, 터널을 빠져나와선 후지산을 곁눈질하며 시골 풍경을 지난다.
곁에 앉은 미츠하를 보니, 마찬가지로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다.
경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난 그 손을 잡았다.
잠시 움찔하던 그 손은, 다음 순간 내 손을 다시 잡아준다.
아직 시선은 창밖이지만, 그 표정은 아까보단 조금쯤 누그러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계기는 미츠하의 한 마디였다.
「둘이서 사당에 가자.」
그건 미츠하 나름의 결의였겠지.
그 날 이후, 서로에 기억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언급하는 걸 꺼리게 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내 스스로가 더 이상 그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미츠하가 곁에 있어준다.
그걸 소중히 여기고 싶었기 때문에.
하지만 미츠하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떠올리지 못하는 기억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가능성이 있다면 시험해보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그 눈엔 분명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 때의 나처럼 과거에 묶여있는 그런 눈이 아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하다며,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대답 대신 1박 2일의 히다 여행을 금세 준비했던 것이다.
나고야에 도착하여 신칸센에서 내리고 갈아타선 기후 현으로 향한다.
저번처럼 위치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다, 이번엔 미츠하가 있다.
지난번처럼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전차에서 내려선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로 교통수단을 바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면허를 따 두었지만, 그 이후 그다지 운전해본 적은 없기에 오랜만의 운전에 상당히 긴장했지만,
그다지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어떻게든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미츠하의 안내를 들으며 운전한다.
점점 짙어지는 초록빛, 왠지 공기가 맑아져가는 느낌이다.
수면에 비치는 석양, 카타와레도키 때의 압도적인 아름다움.
언젠가 미츠하의 몸으로 보았던 이토모리가 떠오른다.
아무 말 없는 우리,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츠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말은 필요 없다.
과거에도 3번 왔었지만, 4번째 온다고 해서 익숙해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요즈음엔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인지, 군데군데 잔디가 무성한 그 길은 왠지 침입을 거절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길 말야, 할머니 업고 걸어갔었던 곳이라구.」
「내 몸으로 무리하지 말아줬음 좋겠는데.」
약간이지만 옛날 얘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미츠하 역시 조금씩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라, 내 몸으로 보았던 광경이 가끔 떠오른다고 한다.
처음 이 길을 오를 땐 세 명이었다.
두 번째는 홀로.
세 번째는 미츠하의 몸으로.
그리고 네 번째는 미츠하와 둘이서.
도중 몇 번이고 쉬어가며 계속 올라갔다.
조금씩 이어지던 이야기도 지금은 완전히 끊겼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불안이 커져가는 거겠지.
이러고도 떠오르지 않으면 어쩌지.
생각이 미치면 더욱 불안해지고 만다.
그래서 난 미츠하의 손을 강하게 붙든다.
괜찮다고.
설령 떠오르지 않아도 난 미츠하 곁을 절대 떠나지 않아.
이 손은 놓지 않아.
꼭 붙든 것만큼, 미츠하 역시 강하게 맞잡아오는 것만 같다.
그리고 도착했다.
칼데라마냥 융기한, 가운데가 움푹 파인 그 땅엔 분명 사당이 있었다.
미츠하의 손을 잡고 주위를 걷는다.
분명 이쯤이었다고 생각한다.
내려다본 그 아래엔 한 때 있었던 이토모리의 잔해.
기억 속에서 빛나고 있었던, 아름다운 풍경은 더 이상 없다.
「여기서 살고 있었는데 말야…」
고등학생 시절까지 살았던 곳의 변화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미츠하.
아플 만큼 와닿는다.
나 역시 잠시였다고는 해도 미츠하의 모습으로 이곳에서 지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미츠하의 마음은 헤아릴 수조차 없겠지.
「미츠하, 좀 더 이쪽으로 와봐.」
그 자리에서 몇 걸음, 2m 정도 움직인다.
이 곳이다.
여기서 우린 처음으로 만났었다.
서로 말없이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미츠하는 아직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다.
말하지 않아도, 맞잡은 손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정했으니까 여기까지 온거야.
역시 아쉽다는 기분이 들긴 해.
하지만, 미츠하의 모든 걸 잃어버린 건 아니다.
앞으로 더 소중한 걸 많이 만들어 가면 된다.
해가 저문다.
조금만 더 있다간 어둠에 휩싸이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그리고 그 때.
「카타와레도키다…」
누가 말한 걸까, 혹은 둘이 함께 말한 걸까.
낮과 밤의 틈새.
시간과 시간의 틈새.
모든 게 뒤섞여 하나가 되어가는 감각.
미야미즈 미츠하가 그곳에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너무나도 그리운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으로.
「타키… 군…?」
「미츠하?」
어느덧 나 역시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것 역시 카타와레도키가 보여주는 환상인가.
「타키 군이다… 타키 군이 있어…!?」
그때처럼 말하며 그때처럼 우는 미츠하가 내게 안긴다.
요즘엔 계속 이런 일 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나, 나 전부 떠올랐어… 몸이 바뀌었을 때의 일도.
혜성이 떨어진 것도. 타키 군이 날 구해준 것도.
그리고, 여기서 타키 군이랑 처음 만난 것도!!」
드디어,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
반쪽과 반쪽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이만큼이나 기쁠 수 있을까.
「드디어 떠올렸어.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것, 잊고 싶지 않았던 것.
여태껏 계속, 그저 타키 군을 만나고 싶었어.」
꼬옥 허리를 감싼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미츠하, 날 기다려줘서 고마워.
계속 찾아줘서 고마워.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둘 다 눈물에 젖어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괜찮아.
카타와레도키의 기적이 다시 일어났다.
진정한 의미로, 우릴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끌어안은 채 시간이 흘러간다.
카타와레도키가 끝나간다.
동시에, 우린 새로운 불안에 휩싸인다.
「다시,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이 기적은 이 시간에만 한정된 걸지도 모른다.
저번에도 그랬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내겐 왠지 확신이 있었다.
이번엔 아마, 잊지 않아.
「그럼 말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이름 써두자구.」
주머니에서 꺼낸 사인펜.
필요할거라 생각해서 갖고 왔다.
「이번엔 제대로 이름 써줄거지?」
그걸론 이름을 알 수 없잖아.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어딘가 기쁜 듯한 미츠하.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지금 여기서 당장 갖고 싶어지잖아.
「자, 시간 없으니까 손 내밀어 줘. 저번처럼 중간에 끊기긴 싫으니까.」
이성의 끈을 붙잡고 미츠하의 손바닥에 글자를 쓴다.
곧바로 사인펜을 미츠하에게 건넨다.
「자, 미츠하도.」
「너무 재촉하지 마. 나도 이번엔 제대로 쓰고 싶으니까.」
그리곤 내 이름을 쓰는 미츠하.
조금 간지럽다.
다 씀과 동시에.
툭.
사인펜이 땅에 떨어졌다.
카타와레도키가 끝났다.
서로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사회인이 된 두 사람의 모습으로.
내 기억은 또렷이 있다.
모두 떠오른다.
미츠하와의 소중한 기억은 분명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미츠하는 어떨까.
「타키 군…」
미츠하가 중얼거린다. 잊어버린 걸까.
역시 기적은 그 시간에 한정된 걸까.
하지만, 아니었다.
바라본 미츠하의 얼굴은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구? 타키 군에 대한 것, 소중한 것.
이젠 안 잊어버릴 거야.
평생, 이다음의 다음 생에도 절대 안 잊어버릴 거야!」
정말 길었다.
여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이런저런 방해를 받아 갈라지고 헤어졌다.
하지만 우린 이렇게 다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미츠하.」
그러니까 다시 전하고 싶다.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줘.」
미츠하의 대답은 빨랐다.
이제 우리에겐 아무 망설임도 없으니까.
「싫다고 해도 안 떠나줄거야! 나 떠나면 저주할거야.」
마주보며, 웃는다.
앞으로 둘이서 미래로 나아가자.
소중한 걸 잔뜩 쌓아가자.
사랑하는 너와 함께 둘이서.
「미츠하, 사랑해.」
「타키 군, 사랑해.」
우리의 그림자가 겹쳐간다.
아아, 정말 행복하다.
끌어안고 키스하는 두 사람의 손바닥에 쓰인 글자를, 밤하늘에 떠오른 달빛이 비춘다.
“널 좋아해.”
“나도”²⁾
[각주]
¹⁾ 원문은 カタワレ(깨어진 조각).
²⁾ 원문은 すきだ, わたしも